‘박찬욱관’ 개관…"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감독으로 기록됐으면"

박찬욱 “제 이름 상영관이 열렸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CGV아트하우스 박찬욱관 개관 기념 포토월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찬욱관’ 개관식이 열린 지난 27일 CGV용산아이파크몰.

평소 스타일보다 더 짧은 머리에 댄디한 회색 수트 차림으로 등장한 박찬욱(54) 감독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나 50대 중반의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딴 헌정관이 들어선 데 대한 부담과 기대가 교차하는 듯 보였다.

박찬욱관은 CGV가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인 박찬욱 감독에게 헌정한 상영관이다. CGV아트하우스 서면의 임권택관과 압구정 안성기관에 이어 세 번째로 들어섰다.

개관 행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박 감독은 “제가 아직 젊은 나이라서 헌정이라는 이름이 어색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박 감독은 “우리나라 영화계는 감독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찌감치 활동을 그만둬서 윗세대가 자꾸 얇아지고 있다”면서 “허진호, 김지운, 봉준호 등 우리 세대 감독들이 60∼70대까지 현역으로 열심히 일해서 앞으로는 50대 중반에 헌정관이 생기는 후배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헌정관을 사양하려 했다가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고 한다.

“(CGV로부터) 기술적으로 이미지와 사운드가 최상인 상태에서, 또 안락한 좌석에서 영화를 상영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자기가 만든 영화를 온전히 최상의 상태로 볼 수 있는 극장을 찾는다면, 이곳을 찾으면 되도록 말입니다.”

개관식에 온 류승완 감독도 “내가 아는 영화인 중 가장 눈이 좋고 귀가 밝은 박찬욱 감독이 직접 테스트까지 마친 이 박찬욱관은 모든 상영관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찬욱관에서는 다음 달 23일까지 ‘아가씨’(확장판) 등 박 감독의 대표작 8편과 ‘더 비가일드’ 등 박 감독의 추천작 7편이 상영된다. 앞으로도 박 감독이 아이디어를 낸 다양한 기획전이 열릴 예정이다.

박찬욱 “제 이름 상영관이 열렸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CGV아트하우스 박찬욱관 개관 기념 포토월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 이어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등 복수 시리즈 3부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박쥐’(2009), 할리우드 진출작인 ‘스토커’(2013), ‘아가씨’(2016) 등 장르를 변주하며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여줬다. 이 가운데 ‘올드보이’(심사위원대상)와 ‘박쥐’(심사위원상)로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2회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올해 제70회 칸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세계 영화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박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몇몇 작품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꼽았다.

“‘올드보이’는 제 이름을 외국에 알린 작품이죠. 또 어떤 면에서는 (흥행에 성공한) ‘공동경비구역JSA’이야말로 저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복수 3부작을 끝낸 뒤 내놓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부터도 제 영화 인생을 나눌 수 있고요. ‘박쥐’를 끝냈을 때는 제 영화 경력에서 한 챕터가 끝났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미국에서 간 것이고, 그런 점에서는 ‘스토커’가 제 필모그래피를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거장의 대열에 오른 박 감독이지만, 잔혹하고 폭력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영국 배급사가 ‘올드보이’를 ‘아시안 익스트림’이라는 카테고리로 소개하면서 그런 이미지가 생겼죠. 그 덕분에 제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데 도움이 됐지만, 제 영화에 편협하게 접근하도록 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극단적인 폭력과 잔인한 묘사라는 인상을 심어줬죠. 하지만 ‘공동경비구역JSA’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아가씨’ 같은 영화도 만들었으니 제 영화를 그렇게 선혈이 낭자한 묘사나 폭력과 장도리라는 이미지로 볼 시기는 지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 감독은 그러면서 “제 영화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작품마다 따뜻한 인간적인 감정과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며 “저는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찬욱[CGV 제공]
박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작품들도 있다. 영화 속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박찬욱식 유머’도 마찬가지다.

“제가 열심히 노력하는 데 비해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면은 유머입니다. 폭력이라든가 이런 것이 유머를 압도해버리죠. 그래서 웃기는 장면인데 웃지도 않고…. 물론 제가 좋아하는 종류의 유머는 무섭다, 슬프다, 고통스럽다 등 부정적인 감정을 배가시키는 그런 종류의 유머이긴 하죠. 그래도 그런 장면이 나오면 웃어주면 좋겠는데, 아마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면 웃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박 감독의 창작의 원동력은 뭘까. “제 생활은 단조롭고, 인생도 큰 굴곡이 없고, 성격도 조용한 편이라 창작 작업에서는 변화가 크고 모험적인 것을 쫓는 성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인생에 큰 굴곡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박 감독에게도 어려운 시절은 있었다.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에 이어 ‘삼인조’(1997)가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면서 오랫동안 생활고를 겪었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어려운 일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제가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합니다. 정말 영화를 만들고 싶고, 제가 쓴 시나리오도 많고, 재미있게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투자가 안 되거나 캐스팅이 안 될 때가 있죠. 그러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합니다. 심지어 책 한 권 살 때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살 돈이 없었죠. 지금은 적어도 책이나 CD는 사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해준 영화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가장 먼저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작한 명필름 대표인 이은·심재명 부부를 꼽았다. “제 전작 두 편이 ‘폭망’해 세 번째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는데, 저에게 큰 영화를 만들 기회를 준 분들이죠. 그분들이 지지해주고, 지원해서 ‘JSA’를 만들 수 있었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죠. 그리고 최민식,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몇몇 여배우들도 많이 생각납니다.”

박 감독은 ‘아가씨’ 이후 아직 차기작을 정하지 못했다. 당초 준비하던 영어영화 ‘도끼’가 마지막 단계서 투자가 무산된 탓이다.

박 감독은 “한국영화와 영어영화 등 이것저것 시나리오를 보고 있다”며 “현재 굴러가는 프로젝트는 여러 개이지만, 투자가 확정된 것이 없다. 조만간 차기작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그 이전에 동생 박찬경 감독과 함께 단편영화를 먼저 선보일 계획도 갖고 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옥자’나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처럼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큰돈은 양날의 검입니다.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만, 그만큼 부담이 따르죠. 저는 남의 돈에 대해서만은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수 있죠. 사실 지금 돌아가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 중에는 제법 큰 영화가 있긴 합니다.”

만약 넷플릭스가 극장 상영이 아니라 온라인 스트리밍 전용 영화 연출을 제안한다면 받아들일지도 궁금했다.

“고민되네요. 그건 어느 감독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극장에서 못 틀어도 감독 입장에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죠. 마틴 스코세이지 역시 신작 ‘아이리쉬 맨’을 넷플릭스와 만들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한국영화사에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건 사가(史家)의 몫이겠죠. 그래도 ‘비슷한 세계에 계속 안주하지 않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라고 썼으면 좋겠네요.”



연합
연합 kb@kyongbuk.com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