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무쇠 같은 검은 나날,
거대한 붉은 황소 같은 태양이 연,
꿈과 허공이 가까스로 지탱하는,
그러다 갑자기 영영 사라져버린 나날,
그 어떤 것도 나의 헝클어진 존재를 대체하지 못했다.

가슴을 맴도는 온갖 운율은 거기서
자기들끼리 밤낮으로 엉켜지다가,
무질서한 서글픈 덩어리로 변한다.

괴로운 매복자로 운명지워진 의심받는 존재,
무감각해지고 눈먼 파수꾼처럼,
매순간의 나날이 모아지는 벽 앞으로
나의 여러 얼굴이 줄지어 선다.

창백하고 무거운, 거대한 불꽃처럼,
부단히 바뀌며 죽어가는 꽃처럼,




감상) 앞집엔 오늘도 불이 켜지지 않는다. 빈집처럼 깜깜하다가 잊고 지낸 친구의 소식처럼 문득문득 켜지던 불빛, 어떤 날은 그 안이 궁금해서 자꾸 눈 돌리게 되던 집, 벌써 여러 날 째 불이 켜지지 않는다. 가끔 생각하다 어느 순간 까마득히 잊어버린 이름처럼 저 집은 오늘도 서글픈 덩어리로 깜깜하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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