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환2.jpg
▲ 황기환 동해안권 본부장

이달 중순 경주의 명산 두 곳에서 기우제가 열렸다.

우리 조상들이 호국의 진산으로 신성시 했던 토함산과 성모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신령스러운 산 선도산 정상에서다.

비슷한 시기에 기우제를 올린 두 단체는 준비한 음식을 제물로 차려놓고 폭염에 시달리는 시민들을 위해 비를 내려줄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했다.

기온이 39.7℃까지 치솟으며 75년 만에 7월 최고 기온으로 찜통더위가 맹위를 떨치면서 폭염과 가뭄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 같은 비는 내리지 않았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바닥을 보인 저수지는 여전히 하얀 맨살을 드러냈다.

물이 부족해 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논바닥도 쩍쩍 갈라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메마른 대지에서 비가 오기를 기다리며 겨우 버티던 밭작물의 시들음 피해도 멈추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농민들의 타들어 가는 가슴도 폭염만큼이나 따가울 수밖에 없었다.

용수확보를 위해 수 km에 이르는 관로를 설치했지만, 수원의 고갈로 쏟아 부은 정성이 헛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급기야 ‘니물 내물’을 따지며 사나워진 농민들의 감정이 폭발해 곳곳에서 물싸움도 발생했다.

마른장마로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면서 농민들의 가슴은 타들어 가지만, 이를 달래 줄 단비는 야속할 정도로 내리길 꺼려했다.

현재 경주지역은 누적강우량이 217.4mm로 평년의 38.1% 수준에 불과하다.

6월과 7월 강우량도 47mm에 그치면서 저수율도 35.1%로 농업용수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상당수 농가는 하천수 등 보조양수장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으나, 이마저도 수원이 부족해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경주시는 가뭄극복을 위한 관정개발, 하천굴착, 다단양수, 살수차 동원, 저수지 준설 등을 위해 지금까지 120억여 원을 투입했다.

이러한 많은 예산과 인력 동원으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기존에 해 온 가뭄대책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가뭄은 앞으로도 반복되고, 피해는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항구적인 중장기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실정이다.

최악의 가뭄이 오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미리 지역 실정에 적합한 농업용수 확보를 위한 수리시설과 비상급수시설을 더욱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히 마련해야 할 방안이라 생각된다.

저수지 물에 대해 위쪽 농가도 아래쪽 농가도 성역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농민들의 의식 전환을 통한 물의 경계를 없앨 필요도 있다.

어지간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큰 하천에 대형 양수장을 설치해, 상류지역 못에 물을 미리 가둬뒀다가 가뭄이 심한 지역에 방류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 하다.

겨우 모은 물을 흘려보내도 중간에서 사라져 버리는 불량수로에 구조물을 설치해, 물 손실을 방지하고 효율적으로 논에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천수답과 같이 가뭄피해가 반복되는 곳은 재배 작물을 벼에서 다른 작물로 대체파종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제 가뭄이 매년 되풀이 될 수 있다.

그때마다 물의 흔적만 남은 채 바짝 마른 개울 바닥에 양수기 파이프를 묻고 물대기 전쟁을 펼칠 수만은 없다.

애타는 농심을 달래 줄 단비를 기원하며 지내는 기우제를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한다.

황기환 동해안권 본부장
황기환 기자 hgeeh@kyongbuk.com

동남부권 본부장, 경주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