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에 대해서라면 오래오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검은 빛이고 나는 펼쳐진 시간을 사랑한다.

예를 들어 점점 어두워져 가는 거리, 어깨를 감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가로등 켜지고, 그림자 사라지고, 나는 머뭇거릴 때,

검은 물로 태어나는 것 혹은 젖은 몸으로 살아가는 것 쉽게,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방법 혹은 혼자서 걸어가는 일

그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나뿐, 비가 온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나는 긴 우산을 들고 있었고 하늘은 우울한 색으로 빛났다.

(후략)




감상) 하늘에 먹구름 끼는 일이나 내가 기분이 깜깜해지는 일, 생리 전 증후군인가 하늘을 보며 자꾸 나를 되짚어 보는 일, 그러나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커피 한 잔 하자 할 때 비는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젖지 않는 우산을 쓰고 개인 하늘 속으로 걸어간다. 마음만 촉촉하다.(시인 최라라)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