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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람은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병원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고 완쾌되는 수도 있지만, 질병의 특성상 현재 의학으로는 완치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법적으로도 의사가 환자에게 부담하는 진료채무는 질병의 치유와 같은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할 결과채무가 아니라 환자의 치유를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현재의 의학 수준에 비추어 필요하고 적절한 진료조치를 다 해야 할 책무 이른바 수단채무라고 보고 있다(대법원 1988. 12. 13. 선고 85다카1491 판결).

그래서 병원이 환자의 질병을 완쾌시키지 못하더라도 환자로부터 치료비를 받을 수 있고, 또한 환자는 치료한 이후에는 치료비를 지급하여야 한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가장 바라는 염원 중의 하나가 질병의 극복이지만, 신은 인간에게 질병의 완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종교라는 것을 통해서 신을 경외하면서도 질병 극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아무리 권력과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건강이 나쁘면 그 모든 것이 공허한 것이 된다. 그래서 재물을 많이 가진 부자들은 남의 병원에 치료를 받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재원으로 세계적인 최신의 의료진을 갖춘 병원을 설립하여 치료받기도 하였지만, 그 역시 인간인 이상 질병으로 인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찾을 수 없을 만큼 매우 특이한 국민건강보험체계를 가지고 있다. 1977년에 500인 이상의 단체를 상대로 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이후, 그 가입대상을 계속 확대하여 1989년에 이르러서는 전국민의료보험제를 시행함으로써 전 국민 건강보험체제를 완성하였다. 연전에 미국에서 잠시 머물 때 알고 지내던 미국 교수가 자기는 대학에서 풀커브리지 의료보험을 받고 있다고 자랑하길래,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그렇다고 하니,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반드시 전 세계적으로 자랑해야 할 제도 중의 하나가 바로 전 국민 의료보험체제이다.

국민건강보험법상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기관은 요양기관으로 당연 지정되어 있지만, 의사가 진료행위를 하고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치료비를 받을 수 있는 요양급여와 받을 수 없는 비급여라는 제한을 두고 있다. 그런데 요양급여와 비급여 영역 이외에 Gray Zone에 해당하는 임의 비급여라는 부분이 있다. 임의 비급여는 법령상 법정본인부담 또는 법정 비급여로 인정된 경우 이외에 환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으로, 법령상 사위 기타 부당한 청구로 인정되어 환수처분을 받게 된다. 사실 의사는 자신의 전공지식에 기초하여 자유롭고 창의적인 진료를 할 수 있어야만 새로운 의술이 개발되고 의학도 발달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질병도 극복될 수 있다. 이 새로운 의술에 대한 치료는 법령상 요양급여에 해당하지 않은 임의 비급여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건강보험에서 법정 요양급여진료의 원칙을 강조하고 임의 비급여와 같은 예외를 매우 제한하게 되면, 의술의 발달은 지체되고 인류는 질병의 질곡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새로운 의술의 발달을 촉진하고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의 비급여에 관한 제한을 일정한 조건 아래 다소 완화할 필요는 있다. 대법원도 당초 임의 비급여 대해서는 허용하지 않았다가, 백혈병 등 특수한 질병의 영역에 대해서는 절차의 부존재 또는 회피 가능성, 의학적 요건, 설명 및 동의라는 3가지 요건을 근거로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무 법원에서는 임의 비급여의 예외적 인정, 특히 설명 및 동의라는 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임의 비급여의 허용범위가 매우 좁은 실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도 임의 비급여에 대한 관리 법제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질병은 인간이 예상할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 치료방법이나 기술은 인간의 노력으로 개발되고 탐구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임의 비급여에 대한 예외적 제한에 관한 해석을, 의사의 질병에 대한 극복 의지를 꺾지 않을 정도로, 다소 완화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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