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잇장 하나를 매달고 장대(將臺) 기둥에 날아와 꽂혔다
적장의 편지였다
역관(譯官)을 불러 읽어보라 했다
수레바퀴만한 달이 성곽을 타고 넘어가는 봄밤이오
오늘도 나는 변복을 하고, 동서남북을 두루 살피고
돌아와 이제 막 저녁을 먹었다오
망루며 포대며 당최 치고 때릴 데가 없더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성에 이미 무릎을 꿇었소
날 밝으면, 성문 앞 팽나무 그늘에서
바둑이나 한 판 둡시다, 우리
내가 지면 조용히 물러가리다
혹여, 내가 그대를 이긴다면
어찌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성을 쌓을 수 있는지,
기술이나 두어 가지 일러주지 않겠소?
감상) 그대가 읽어주었으므로 맑은 아침이 되었고 그대가 읽어주었으므로 아름다운 안개가 되었다. 그대가 알아봐 주지 않았다면 그 어디에도 없었을 오후가 뚜벅뚜벅 내게로 왔다. 나는 그 오후 안에서 처음으로 그대를 본다.(시인 최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