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성지’ 칠곡·영천, 참혹한 전쟁터에 싹튼 ‘평화의 장’

단일 전장 기념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올해는 제2종 박물관(경북도 등록 제2017-4호)으로 등록된 칠곡호국평화기념관. 개관 20개월 만에 누적관광객 30만 명을 돌파하며 호국평화 성지로 우뚝섰다. 김재원 기자 jwkim@kyongbuk.com
글 싣는 순서

1. 포항의 현충시설과 문제점

2. 칠곡·영천 ‘낙동강 호국평화벨트 조성사업’

3. 부산 UN기념공원과 문화시설의 조화

4.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

- 음악과 함께하는 전쟁기념관 강당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앞에 흐르는 낙동강과 칠곡보가 6.25전쟁 당시 치열한 상황을 말없이 보여준다. 김재원 기자 jwkim@kyongbuk.com
1950년 6월 25일 기습적인 북한군의 남침에 서울을 점령당한 한국군은 남으로 남으로 후퇴를 거듭했다.

파죽지세로 내려오는 북한군을 저지하고 반격의 교두보를 만든 곳은 낙동강 방어선이었다.

낙동강을 경계로 동쪽으로 넘어오는 적을 막고 칠곡 왜관을 중심으로 영천, 경주, 포항, 영덕에서 북쪽에서 쏟아져 오는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지금도 낙동강 방어선을 따라 이날의 흔적이 경북 곳곳에 산재해 있다.

‘화랑, 선비, 호국, 새마을 4대 정체성이 경북의 혼’이라는 김관용 경북도지자의 말처럼 전국 독립유공자 1만4천574명 가운데 경북지역 유공자가 2천125(14.6%)명이나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 만큼 호국시설도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호국보훈의 행사에만 반짝하는 시설로 전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6.25 전쟁 당시 격전지 중 하나인 포항은 이후 해병대의 요람으로 거듭났지만 전쟁 추모 시설은 곳곳이 흩어진데다 해병대 역사관마저 이들 추모시설과 단절돼 군사 호국 도시라는 아이템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경북일보는 4차례 보도하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포항을 비롯한 경북도의 호국시설을 점검하고 칠곡, 영천 등 각 지자체가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본다.

또 전쟁참전 역사를 세세히 남기고 이를 보존한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 시를 벤치마킹하고 부산 UN기념공원 활용도 확인한다. 편집자 주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입구에 세워진 낙동폭포.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이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서 잠시 쉬어가는 쉼터다. 김재원 기자 jwkim@kyongbuk.com
△ 친화적 시설로 경북 호국 관광의 1번지로 거듭난 칠곡

“모든 주민은 지금 마을을 떠나십시오. 오늘 밤 왜관철교를 폭파할 것입니다.”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밀어닥쳤고 곧 대구를 점령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세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낙동강과 경북 동북부 산악지대에 방어선을 쳤지만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기세는 좀처럼 꺾일 줄 몰랐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워커 사령관은 낙동강 모든 교량에 폭파 명령과 함께 소개령이 내려졌고 왜관철교는 피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끝없이 밀려드는 피난민 뒤로 북한군 전차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모습을 드러내자 호버트 게이 미 1기병사단장의 폭파명령이 왜관철교에 퍼졌다.

소개령이 내려진 지 7시간 30분만인 1950년 8월 3일 오후 8시 30분 북한군의 도하를 막기 위해 길이 369m, 폭 4.5m의 왜관 철교는 끝내 폭파 됐다.
지역 주민들이 마현산 공원, 꽃 동산 등으로 부르는 영천 충혼탑 공원에 우뚝선 충혼탑 좌우로 영천전투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재원 기자 jwkim@kyongbuk.com
수많은 피란민이 다리와 함께 생사의 갈림길에 섰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북한군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고 나라를 구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3년 ‘호국의 다리’로 재탄생했다.

낙동강 방어선의 최일선이었던 칠곡은 그 치열한 전투만큼 6.25 전쟁과 관련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6.25 전쟁 최대 격전으로 잘 알려진 다부동 전투를 비롯해 328고지, 유학산, 수암산, 가산산성, 가산·팔공산 전투 등 수없이 많은 격전이 벌어졌다.

가산면 천평리 신주막 계곡에서 벌어진 6.25 전쟁 최초의 전차전인 볼링앨리 전투 역시 이곳 칠곡에서 펼쳐졌다.

칠곡군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호국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건립하고 2015년 10월 15일 문을 열었다.

왜관지구 전적비가 자리 잡은 언덕에 사업비 548억 원을 들여 연면적 9천483㎡의 지하 2층, 지상 4층으로 이루어진 단일 전장 기념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올해는 제2종 박물관(경북도 등록 제2017-4호)으로 등록됐다.
지역 주민들이 마현산 공원, 꽃 동산 등으로 부르는 영천 충혼탑 공원에 우뚝선 충혼탑 좌우로 영천전투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재원 기자 jwkim@kyongbuk.com
하지만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과거 흔히 볼 수 있던 기념관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며 문화 관광 기반시설로 자리 잡았다.

다채로운 체험을 통해 호국안보의식, 나라사랑정신 함양 뿐 아니라 추모·체험·교육·여가기능을 갖춘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 것.

8세 미만 아이들만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 평화 체험관을 마련했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인형 만들기, 키즈북아트, 무궁화 바로알기 등 다양한 체험학습은 물론 전투체험관, 4D 입체영상관, 전망대 등도 있어서 가족 단위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또 낙동강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낙동 폭포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데다 카페·식당 등 편의시설도 있어 주민들이 더위를 식히는 휴식공간으로 사용해 보다 친근한 시설로 다가갔다.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내 영천전투전망타워. 전망대에 올라서면 영천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김재원 기자 jwkim@kyongbuk.com
△ 권역별로 운영…체험활동을 중심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1950년 9월 6일 북한군은 5개 연대를 동원해 영천을 돌파했다.

영천이 점령될 경우 국군 1사단과 2사단이 분리돼 동서 보급로가 차단됨은 물론 북한군이 대구방면으로 진출하면 왜관과 다부동 일대 국군과 미군의 후방 방어선이 차단되고 경주방면으로 진출 시 부산이 위협받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국군 8사단 9공병대대는 북한군이 경주로 진출한 빈틈을 타 영천 읍내로 돌입해 사단사령부를 탈환하는 등 3일 간 치열한 시가전을 벌여 승리를 쟁취해 낙동강 동부전선 방어에 성공했다.

국군 단독으로 반격에 성공하면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것은 물론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3월 21일 개장한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는 6·25전쟁 당시 역전의 신호탄이 된 영천전투를 기념하고 나라사랑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이 목표다.

실내 전시물 관람 위주의 단편적인 시설 운영이 아니라 메모리얼파크 시설이 들어선 마현산 일대 현충시설 탐방이 중심이다.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내 시가지 전투장에서 서바이벌체험을 마친 아이들이 웃음꽃을 핀 채 장비를 반납하고 있다. 김재원 기자 jwkim@kyongbuk.com
전쟁체험, 야외서바이벌 체험 등을 통한 재미있는 안보교육, Edutainment를 추구하는 체험권 조성사업은 크게 영천전투전망타워와 전투체험시설로 나눠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2천295㎡ 규모의 영천전투전망타워에는 1950년 영천 전투 체험물이 전시됐고 임진왜란부터 6.25전쟁까지 영천에서 일어난 호국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6.25전쟁 당시 영천 시가지를 재현한 시가전체험장, 고지전체험장, 국군훈련장이 마련된 전투체험시설(서바이벌체험장)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이곳을 찾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실제로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에는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시가지 체험을 위해 서바이벌 장비를 착용한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게임을 끝낸 아이들은 서바이벌 체험 장비를 풀고 나서도 아쉬움이 남는 지 한참 동안 흥분이 가지지 않았다.

이날 서바이벌 체험을 한 정모(12)군은 “6.25과 기념관이나 탑에 가면 위축되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오늘은 그런 기분을 느낄 새 없이 재밌었다”고 말했다.

특히 영천은 이곳 체험권을 비롯해 추모권을 각기 조성하며 호국시설을 권역별로 분리·운영에 나섰다.

국립영천호국원 인근에 조성되는 추모권은 올해 준공할 예정인 호국기념관을 중심으로 6.25전쟁과 영천전투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참전세대와 전후세대간 교감의 장, 추모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할 계획이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다양한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마련해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김재원 기자 jwkim@kyongbuk.com
△ 단순한 호국시설을 넘어 연계를 통한 문화관광시설로

칠곡과 영천 두 곳 모두 6.25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장소로 지역 곳곳에 다양한 충혼탑이 산재해 호국문화도시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단순히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분을 기리기 위한 기념장소를 떠나 하나의 문화관광 시설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칠곡호국평화기념관과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는 신생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가족과 함께 가볍게 방문하는 장소로 각광 받으면서 벌써 생활 속 깊숙한 곳에 들어섰다.

또 두 도시 모두 인접한 대도시인 대구를 비롯해 전국의 관광객들을 모으는 역할을 하는 지역의 관광아이템으로 자리 잡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다른 관광시설과의 연계는 물론 각 기념관끼리 교류에 나서면서 발전을 꾀하는 중이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 2층 카페 한켠에 마련된 공간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김재원 기자 jwkim@kyongbuk.com
개관 20개월 만인 지난 6월 10일 누적관광객이 30만 명을 돌파하면서 호국평화 성지로 우뚝 선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칠곡보 오토캠핑장, 관호산성 둘레길, 왜관철교(호국의다리), 가실성당, 구상문학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칠곡나눔숲체원, 송정자연휴양림 등 1코스 왜관권을 시작으로 제5코스 북삼·약목·기산권까지 칠곡군 권역별 관광안내를 통해 관광객 유입을 노리고 있다.

칠곡 호국시설 관계자들이 새로 개관한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를 방문해 운영 노하우를 공유하고 새로운 시설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는 등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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