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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기 한국은행 포항본부장

최근 글로벌 경제가 완만하지만 회복기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포항을 비롯한 경북 동해안지역의 경제여건은 생각만큼 빠르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전을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벨트라인, 포항을 중심으로 하는 철강산업,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관광서비스산업 등 3대 산업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원전 정책의 변화는 그동안 지자체들이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일정 부분의 세수를 확보하고 그를 통한 다양한 사업추진이 가능하였던 동력 일부를 약화 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 FTA의 논의 재개를 둘러싼 자동차, 철강 분야에 대한 강도 높은 보호주의 정책도 지역경제에 그리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 분야의 최대의 화두는 역시 일자리 창출이다. 비싼 대학 졸업장을 받고도 취업을 위해 또 다른 스펙 쌓기에 몰두해야만 하는 이 시대 청년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뒤늦은 감도 있다. 법정 정년제도에도 불구하고 40대 중후반이 되면 구조조정, 경영개선이라는 핑계로 해고에 내몰리는 중년층의 재취업을 위해서도 일자리 창출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고령층은 또 어떠한가? 재정의 재분배, 사회보장 기능의 미비 등으로 노인 빈곤율은 이미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구조이다.

‘일자리 창출’은 새로운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도 누누이 그랬다. 그만큼 국민에게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일자리 창출이란 단순히 자릿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도전에 나아가는 청년층이 원하는 좋은 직장, 중년층의 경험에 걸맞은 일자리, 쫓기듯 살아온 일상에서 벗어나 인생의 여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 고령층에 적당한 일자리 등이 원하는 일자리이다. 신규시장의 창출, 새로운 사업 분야의 발견, 신제품의 개발 등과 같은 혁신적인 활동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통해 기존의 일자리와 무관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만 한다.

포항, 경주 등 경북 동해안지역의 경우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려할 때 지역경제의 재건은 역시 제조업과 관광서비스업에 달려 있다. 특히 제조업이 갖는 중요성은 비단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부가가치 창출, 직간접 연관 효과 면에서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지역에서 새로운 제조분야를 자율적인 선순환을 통해 발아시킬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이다. 신제품의 씨앗을 만들 연구개발 인프라는 충분히 갖추고 있으나 제조업 전체를 아우르는 생태계는 여전히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포항에는 제철, 경주에는 자동차부품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재, 부품만 있는 불완전한 구조이다. 제품의 설계부터 금형, 주물, 주조, 단조, 가공과 조립, 테스트 등 다양한 제조 분야에 걸친 기업들이 있어야만 신제품을 개발하여 최종제품까지 완성 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은 그러한 과정에서 저절로 따라오는 부가효과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역에는 다양한 분야에 걸친 기업들이 고르게 존재하고 있지 않다. 즉 제조업의 기반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미래의 기술경쟁력과 거창한 국제도시를 꿈꾸는 것도 좋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떠한 제품이라도 우리 지역 내에서 스스로 제품설계부터 최종제품의 완성까지를 이룰 수 있도록 최소한 단절된 중간 단계를 징검다리 수준까지는 보완하는 작업부터 서둘러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산업생태계를 조성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먼 시야도 중요하지만 우선 한 발자국씩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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