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이후 당의 정체성을 놓고 집단 고민 중이던 자유한국당이 2일 자체 개혁방향인 ‘혁신선언문’을 발표했다. 당은 혁신선언문을 통해 “집권여당으로서 국리민복과 국가발전을 위해 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역할을 망각했다”는 뼈아픈 지적을 했다. 특히 계파정치라는 구태에 집착하다 야당으로 전락했다고 통렬히 반성했다.

이 혁신선언문은 앞으로 ‘신보수주의 가치의 깃발을 높인 든다’고 선언하고, 혁신의 방향으로 △긍정적 역사관 △대의제 민주주의 △서민중심경제 △글로벌 대한민국 등 4가지를 내세웠다. 혁신선언문은 관료주의와 보신주의를 타파하고 대대적인 인적혁신과 인재영입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모두 옳은 말이고 보혁 어느 정당이든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따라서 자유한국당만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고 독특한 노선 정립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신보수주의 이념에 기초한 혁신을 통해 가치 중심의 정당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것은 뜬구름 잡는 허상에 불과하다. ‘보수주의’와 ‘신보수주의’라는 것이 무엇이 다른지 설명이 없다.

그러나 보수주의니 혁신주의니 하는 이념구분이 실제 우리 정치에 적용되는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더 많다. 근본적인 성찰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하자면 ‘보수주의’는 전통, 자유 등 보존할 만한 가치를 지키는 것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전통적인 가치나 정책까지 급격히 허물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혁신주의’(진보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이다. 보수나 혁신이나 모두 역사의 진보를 부정하고 기득권을 무조건 지키려는 수구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유한국당과 전신인 새누리당이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공천 파동과 최순실 사태라는 부패 스캔들이 핵심이다. 최 씨 사태는 “모든 권력은 국민한테서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원리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는 정치과정이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들이 이를 무시하고 농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헌법 전문에 명시돼 있듯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적 시장경제를 가치로 삼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권력을 동원해 사기업을 주물러 온 것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 즉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사태에 대해 솔직한 평가와 반성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더욱이 ‘당의 환골탈태’를 말했지만, 환골탈태는 인물의 쇄신이다. 당장 당의 지도부부터 새 인물로 바꾸는 것이 쇄신이다.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과 지방의원들의 대거 물갈이가 환골탈태다. 위기에 처한 영국 보수당이 약관 마흔 살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당 대표로 앞세워 당을 재건하고 정권을 탈환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그대로 둔 채 ‘혁신’을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부도날 어음일 가능성이 큰 허장성세요 눈가림용 쇼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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