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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면 먼지나는 식의 표적사정 안 된다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kjm@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8월06일 17시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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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지난 6월 대법원 항고심 재판은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된 권영세 안동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표적수사가 가져온 폐단 중의 하나다. 변호사 돈벌이는 됐지만 수많은 불신과 사회적 낭비를 가져왔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경북 지역 중견기업인 A그룹의 세무조사 시도는 김기춘 청와대의 ‘하명(下命)설’이 파다했으나 정권이 먼저 무너졌다. 수사 및 기소권 오남용의 의혹을 받아 온 검찰의 이른바 ‘표적 사정(司正)권한’이 개혁의 심판대에 섰다. 

검찰이 수사 및 기소권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한 사건은 그동안 권력의 역학관계에 따라 심심찮게 일어났다. 정부수립 이래 70년 동안 가장 잘못된 대표적인 사례는 ‘진보당 조봉암 사건. 1958년 법원은 검찰이 증거도 없이 공소사실도 특정하지 못한 채 나중에 법정에서 번복한 양이섭의 자백을 근거로 조봉암을 간첩죄로 사형 판결했다. 정권의 지시로 검찰 법원이 합작한 희대의 괴사건이다. 

‘권력형 검찰’의 무책임한 수사기소권 오남용의 문제점은 정치권력이 검찰을 이용하고, 일부 검찰 수뇌부들은 자신의 출세를 도모해온 악의 공생 관계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봐주기 수사나 제 식구 감싸기 수사가 아니면, 갓끈 떨어진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무리한 보복 수사와 기소가 그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부엉이바위의 비극을 만들어 냈고, 최순실 일당이 국정을 농단 전횡해도 검찰권은 잠자코 있었지 않았던가. 

우리나라는 대한제국 시절 검찰제도가 도입된 이래 민주주의 제도로서의 검찰의 존재 경험이 사실상 없었다. 식민지 통치나 독재 권력의 유지 존속을 위해서 검찰권이 활용됐을 뿐이다. 2000년대 이후, 즉 21세기에도 마찬가지. 한명숙 전 총리와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은 모두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검찰 법원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좀 더 많이 보장하는 권력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함에도 아직 성역으로 남아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에 오히려 검찰의 권한이 강화되는 역사의 퇴보가 일어났다.

국가정보원 활동이나 세무조사도 그렇다. 세무조사가 민원인의 부정한 청탁 때문에 실시되기도 한다. 요즈음은 지방 선출직 권력자(?)들이 제 편에 줄 서지 않거나 맘에 들지 않는 직원을 찍어내기 위해 감사권이라는 칼을 휘두르기도 한다. 선출직 공직자와 패거리를 만든 조직내 이른바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의해 감사권이 사용(私用)되기도 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표적사정 등 사정권의 오남용은 청산돼야 할 적폐 1호다. 이 보다 반(反)사회적인 적폐는 없을 것이다. 과거 김영삼(YS) 정부는 80년대 무시무시한 권력을 쏟아낸 하나회도 척결했다. 문 정권은 하나회 척결(피 뽑느라 벼를 뽑아버리는 부작용이 있었지만)처럼 과단성 있는 조치로 잘못된 사정 관행을 이제는 뿌리 뽑아야 한다. 엄정한 법의 수호자여야 할 기관이 검찰이다. 검찰은 형사소추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권력기관이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하면 “이 사람 죄 있으니 벌을 주시오” 하는 권한이 검찰에게만 있다.

중앙정부의 사법권이 공정하게 집행됐느냐에 대해 감시 견제를 소홀히 해온 국회도 문제다. 국회의원들은 이를 방기하거나 오히려 즐겨왔다. 두 기관은 길항(拮抗)관계다. 줄다리기는 양쪽이 팽팽하게 당길 때 묘미가 있다. 긴장이 살아있어야 한다. 한쪽이 놓아버린 줄다리기는 이미 줄다리기가 아니다. 정부 사정기관과 국회는 서로의 역할과 그리고 반대 작용으로 국가의 항상(恒常)성을 유지해야 한다. 편측 마비는 조직의 생명이 지속되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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