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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새경북포험 포할지역위원회 위원·시인

경남 산청에 가면 성철 스님의 생가 터에 지은 사찰 겁외사가 있다. 그 기념관엔 사십 년 입으신 누더기 가사와 검정 고무신 등 유품이 전시돼 스스로 숙연해진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하셨든가. 큰스님의 속세를 초탈한 깨달음의 말씀이나, 요즘의 산수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상념이 든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물과 단백질로 이뤄졌다. 우리 인체는 70%가 수분이다. 갓난아이는 80%에 이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물기를 잃어 간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평균적으로 몸속의 수분이 십 분의 일 이상 손실되면 생명이 위험하다.

인류에게 성경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책은 노자의 도덕경. 그는 ‘수류육덕’이란 사자성어로 물의 속성을 상찬한다. K-water(한국수자원공사)가 즐겨 차용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노자는 말한다. 무엇보다도 물처럼 행동하라. 방해물이 없으면 물은 흐른다. 둑이 있으면 물은 머무른다. 물은 그릇이 생긴 대로 따른다. 세상에 물보다 겸손한 것은 없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힘이 강하다고.

심리적인 최고의 물맛은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샘물이 아닌가 싶다. 중국 산동 성의 성도인 제남은 샘의 고장. 청나라 건륭제가 마셨다는 표돌천은 3대 명소의 하나다. 그는 타지로 행차할 때 이를 챙겼다고 전하는데 ‘천하제일천’ 칭호도 하사했다. 이천칠백 년 역사를 품은 샘으로서, 그 안쪽엔 제국의 물맛을 시음할 수 있는 우물 비슷한 음수대가 놓였다. 입장권을 제시하면 무료이나 물통이 없을 경우 따로 구입해야 한다. 황제가 드신 식수는 약간 무겁고도 밋밋했다.

체코의 유명 온천 도시 카를로비 바리는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요양한 약수. 신성 로마 황제인 카를 4세가 사냥을 하던 도중에 사슴을 쫓다가 발견했다. 하여 시내 각지에 사슴 동상이 세워졌고, 온천욕이 아닌 마시는 온천물이라 색다르다. 가판대의 온천수 전용 컵을 사서 콜로나다를 산책하며 음미한다. 여섯 곳의 땅속 더운물을 마셨는데 무려 64도나 되는 열천도 있었다.

지구는 3분의 2가 물로 덮여 있으나 담수는 의외로 적다. 97%가 바닷물이니 그럴 만도 하다. 빙하와 지하수를 제외하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민물은 극히 일부분. 우리는 깨끗한 음용수를 얻고자 산길을 걸어 생수를 긷고, 돈을 들여 정수기를 설치하고 먹는 샘물을 구입한다.

세계 도처에 물 부족이 심각하다. 이는 국지적인 문제이면서 글로벌한 이슈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홍수 지역의 물을 옮길 수도 없다. 배보다 배꼽이 크기 때문이다. 가뭄은 시작과 끝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재앙이다. 피해액 산정도 쉽지 않다. 그냥 해갈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힌다. 이강덕 포항시장이 가뭄을 특별재난구역에 포함하자는 건의는 일리 있다고 여겨진다.

한국의 수돗물 공급량은 유럽 국가의 두세 배쯤 되고 가격은 원가의 80% 수준이다. 수돗물 음용 비율은 5% 미만으로 대부분 별도의 마실 물을 구한다. 폐수 방류, 녹조, 이물질 검출 등 불신이 심한 탓이다.

근래 각 가정으로 ‘수돗물 품질 보고서’가 배부됐다. 곰곰이 읽어본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를 식수로 사용해도 좋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부족해 아쉽다. 단지 상수도 수질검사 항목에 ‘기준적합’ 도장만 찍혔을 뿐이다. 서울시의 병물 아리수처럼 적극적인 수돗물 홍보가 요구된다.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라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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