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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이야기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등록일 2017년08월08일 17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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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어떤 이야기든 모든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 곰과 호랑이, 여우와 두루미, 용과 원숭이(혹은 새우) 같은 것들은 모두 인간의 종류나 속성을 풍자하기 위해서 기용된 배우들입니다. 그들의 가면을 벗기면 영락없이 인간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한 예로, ‘용이 개천에 내려오면 새우들이 놀린다’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제가 그 노래를 들은 건 ‘변검’(1995,오천명)이라는 영화에 섭니다. 변검(얼굴 바꾸기)의 명인이 자신을 한갓 광대로 여기는 돈 많은 극단주를 비웃는 내용입니다. 비전 기술을 지닌 자신은 용(국보급 예술가)이고 돈푼깨나 있는 속물 극단주는 새우(소인배)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용이 새우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개천에서 나서 개천에서 평생 살다가는 새우가 용을 알아볼 리가 없습니다. 새우에게는 그저 자기와 비슷한 등껍질을 가진, 조금 큰, 못 보던 놈에 불과합니다. 자기 눈앞에 있는 자가 때가 되면(물을 만나면) 비를 부르고 천둥을 치게 하는 용이라는 것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습니다. 새우에게는 오직 새우의 삶이 있을 뿐이니까요.

새우는 그래도 좀 낫습니다. 귀엽기는 합니다. 카프카는 ‘변신’이라는 작품에서 몰골이 흉악한 벌레를 등장시켜 인간성의 한 측면을 깊이 있게 드러냅니다. 우리 전래 민담 중에서도 우렁각시 이야기나 지렁이낭군 이야기 같은 것들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인간탐구의 목적 아래 만들어진 벌레 이야기 중에는 카프카의 ‘변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인간성 통찰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충격적인 서사 전개, 공감을 자아내는 세밀한 심리 묘사는 언필칭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나누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는 상태가 보였습니다. ‘그의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커다란 지네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레고르는 벌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보내야 해요”누이동생이 소리쳤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아버지.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이렇게 오래 그렇게 믿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오빠일 수가 있지요? 만약 이게 오빠였더라면, 사람이 이런 동물과 함께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아차리고 자기 발로 떠났을 테지요. 그랬더라면 오빠는 없더라도 계속 살아가며 명예롭게 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이 동물은 우리를 박해하고, 하숙인들을 쫓아내고, 분명 집을 독차지하여 우리로 하여금 골목길에서 밤을 지새게 하려는 거예요. 보세요, 좀, 아버지” 누이동생이 갑자기 소리쳤다. ‘프란츠 카프카(전영애 옮김), ‘변신’ 중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르는 하루아침에 벌레가 되면서 식구들의 모진 박대를 받습니다. 결국은 방안에 고립된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통해 “진짜 벌레는 그레고르가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다”, “인간은 모두 벌레다”, 카프카는 그렇게 말합니다. 거의 한 세기 전의 작품입니다만 조금도 그 울림이 차감되지 않은 채 전달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으로 의미를 확산시킵니다. 명작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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