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선 시인 두 번째 시집 '꽈리를 불다'
첫 시집 '돌개삼' 이 후 10년 만에 펴내

경북 울진의 시인 남효선이 두 번째 시집을 냈다. 그가 1989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지 근 20년만인 2008년 첫 시집 ‘돌개삼’을 낸 이후 근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꽈리를 불다’를 냈다. 1, 2년 만에 시집을 뚝딱뚝딱 내는 시인이 있는 것에 비하면 남 시인은 시를 어렵게 낳는다. 그의 시에는 시간이 축적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진주 같은 빛이 내재되기 때문에 당연히 과작(寡作)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의 시에는 첫 시집의 시편들에서부터 두 번째 시집의 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민중에 대한 믿음과 애정, 민중의 삶이 빚어낸 역사가 차곡차곡문채(文彩)를 이루고 있다.

두 번째 시집에도 공동체 삶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배어나는 시로 꽉 차 있다. 남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 대해 공광규 시인은 “남효선은 제재나 기법에서 80년대 문단을 장악했던 민중과 민족시의 전통과 맥락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변절하지 않는 민중 사랑의 올곧은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 시인은 남 시인에 대해 별명 하나를 붙였다. ‘여민(與民)의 시인’이라고 했다. 시집 속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성장기 일화가 있는가 하면, 지아비가 바다에 나가 빠져 죽은 서러운 이야기가 있고, 쉰여섯 해를 노동 살이 만 고집해온 사내의 죽음과 약초를 팔러 울진 장과 통리장을 떠돌던 노인의 회고가 있다.

남 시인의 시 전편에는 민초의 삶에 대한 무한 애정이 담긴 민본 사상이 깔려 있다. 이번 시집에는 ‘여민락(與民樂)’이란 제목의 시도 있다. “오늘 못 팔면 내일 팔면 되는 거여 애간장 탈 일이 무에 있어 집에 가면 마누라가 있어 자식새끼가 있어…오늘이 설 대목장이라 울진 장도 이젠 한물갔네 옛날이사 좋았지 약초 닷 단 묶어 들고 전 펼치면 한나절도 안돼 술청에 앉았지 돼지국밥 말아놓고 소주 한 잔 부으면 창자 속이 찌르르하니 근심이 봄눈 녹듯 사그라들고…본시 오래 발 못 붙이고 사는 인생이라 발길 되돌리던 날, 왠 달빛은 그리도 환하던지 달빛처럼 이어진 산길, 외줄기 산길 타면서 한사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내 길은 가물가물 달빛만 그득했네” 시인은 한 장돌뱅이의 회한에 찬 장황한 읊조림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듣고 있다. 이 같은 시구절에서 민초의 애잔한 삶의 애환과 함께 하는 남 시인의 여민의 정이 뚝뚝 진다.

남 시인의 시에는 비장하고 무거운 삶의 무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네’나 ‘운명’같은 시를 보면 살가운 인간애가 느껴진다. “…아내는 이월 초순에 지네를 만난다/ 능숙한 솜씨로 지네를 잡아 노끈에 맨다// 달은 훤한데/ 지네는 잡혀 달 속에 있다// 지네가 슬슬 달을 갉아먹는다// 시월 가을바람이 깊어지던 어느 날/ 아내는 폐경을 만났다” 지네가 달을 갉아먹은 뒤 아내의 폐경이 찾아왔다는 달에다 아내의 월경을 환치 시켜 놓는 시인의 놀라운 감성이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안동 시인 안상학은 남효선 시인을 뼛속까지 같은 색깔의 울진 소광리 황장목에 비유했다. 안 시인은 “시를 해독하기 어려워진 시대에도 아랑곳없이 여전히 리얼리즘의 한 축을 우직하게 지키고 선 그의 시. 나는 다시금 다가올 시의 시대에 회복해야 할 미덕의 한 징후로 읽었다”고 남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평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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