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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를 보면서

윤종석 새경북포럼 구미지역 위원·정치학 박사 등록일 2017년08월13일 16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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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석 새경북포럼 구미지역 위원·정치학 박사

여름 휴가철 극장가를 달구는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하 식민통치 시기에 강제 징용된 우리 민족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일본 나가사키항 근처에 있으며,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이 억압과 핍박 속에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실존의 섬으로 모양이 해상군함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동안 잊혀졌던 ‘군함도’의 아픈 기억이 새롭게 조명된 이유는, 과거사의 반성 없는 일본의 만행이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의 상징성만 부각해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일본 우익들의 군국주의 망령부활은 급기야 독도 찬탈 음모로 왜곡된 교과서를 만들고, 전쟁이 가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개헌준비에 온 힘을 다하는 오늘의 일본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군함도’는 위안부협상과 함께 우리 국민의 공분을 충분히 사고도 남는다.

강점기하 강제징용으로 인해 노동력과 인권을 수탈당한 당시의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는,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떠나 우리 민족의 치유하지 못할 상처이다.

식민통치 수난기의 상처는 강제징용을 비롯해 부지기수이지만, 36년의 강점기는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의 단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치욕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한· 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는 과정과 의혹에 쟁점이 많은 문제이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규명하지 않고 불과 10억 엔이라는 합의금을 내세워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무시하면서까지 졸속합의에 이른 것은, 소녀상 철거를 비롯해 국민 정서를 외면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판 것과 같다.

그런데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협정이라고 재합의를 거부하는 철면피 같은 모습은, 패전 후 전범국으로 반성은커녕, 72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아무것도 변하게 없는 막장의 일본이다.

국가의 힘은 강력한 정부를 바탕으로 외교력과 정치력이 강인해질 때 가질 수 있다.

재합의를 거부하는 일본의 모습은 우리를 얕보는 무시와 같으며, 무시는 우리의 자존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국가는 강인한 정부를 바탕으로 튼튼한 자립성을 가져야 한다. 동맹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 자체가 국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안보는 강력한 자기 보호능력인 국력이 강할 때 지킬 수 있다.

광복 72주년.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가해자로의 책임보다 전쟁의 피해자로 부각하는 일본의 이중성에 용서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독도 문제부터 한일협정과 위안부 문제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한일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불거진다면, 심각한 대일관계는 물론, 핵과 미사일로 긴장상태를 만드는 대북정책의 대응 공조까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국가의 전략적 패러다임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현실에서,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위안부협상은 결코 양국의 이익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새로운 합의의 절충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파싸움과 의미 없는 논쟁으로 인해 국력이 소모되는 그때, 어김없이 주변국에 짓밟히는 전쟁사는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미사일 도발로 위급한 정부의 대응을 두고 여야의 정쟁이 뜨겁다. 이유 없는 반대보다 대안 있는 정책을 두고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댄다면 지금의 위기도 슬기롭게 돌파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8월 15일 7천500만 원의 성금으로 세워진다는 인천 부평공원의 강제징용자상징물 ‘해방의 예감’이 상영 중인 ‘군함도’와 함께 강점기 시대의 아픈 역사를 아우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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