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잇다 너의 눈 속에
꽃이여, 네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너를 바라보던 내 눈 속에
너는 있다

다람쥐여, 연인이여 네가 바삐 겨울 양식을 위하여 도심의 찻길을 건너다 차에 치일 때
바라보던 내 눈 안에 경악하던 내 눈 안에
너는 있다

저녁 퇴근길 밀려오던 차 안에서 고래고래 혼자 고함을 치던 너의 입안에서
피던 꽃들이 고개를 낮추고 죽어갈 때
고속도로를 달려가다 달려가다 싣고 가던
얼어붙은 명태들을 다 쏟아내고 나자빠져 있던 대형 화물차의
하늘로 향한 바퀴 속에 명태의 눈 안에
나는 있다

나는 그렇게 있다 미친 듯 타들어 가던 도시 주변의 산림 속에
오래된 과거의 마을을 살아가던 내일이면 도살될 돼지의 검은 털 속에


(후략)




감상) 나는 나 아닌 것들의 눈이다. 나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나 나 아닌 것들이 나를 보고 나에게 나를 가르쳐준다. 나는 어젯밤 영일대 하늘로 날아오르던 풍등을 보았으나 그 위로 구름에 가려진 달이 타오르는 걸 보았으나 내가 본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당신 외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눈을 가졌으니.(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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