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이 대통령 시절 뉴욕의 한 모임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릴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배석해 있던 루빈 재무장관의 안색이 변했다. 행정부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깼기 때문이었다. 당시 러시아가 루블화를 절하하고 모라토리엄을 선언,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바람에 제2 세계 대공황의 우려가 팽배해 있을 때였다.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인기가 급락하던 클린턴으로선 금융가에 무엇인가 선심을 쓰고 싶었던 참에 한마디 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연설이 끝나자 재무장관이 연단으로 뛰어 올라가 황급히 진화작업에 나섰다. “금리 조정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고유권한이며 연방정부가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다”며 대통령의 월권을 지적, 대통령을 머쓱하게 만들었으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시켰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마셜이 하급 장성일 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 석상에서 마셜 장군에게 물었다. “비행기 1만 대를 제작하려고 하는데 장군의 생각은 어떤가?” 대부분의 각료들이 ‘yes’로 찬성했지만 마셜은 반대했다. 그 많은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과욕 탓이라고 여긴 마셜은 “각하, 저는 각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동을 걸었다. 화가 난 루스벨트는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다들 마셜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뒤 33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저는 제가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말씀드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나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네. 언제든지 솔직하게 말해주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마셜의 용기, 그것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루스벨트의 금도가 돋보이는 일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의 독주로 “내각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국민이 많다. 증세 방침이 확정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평소 증세 신중론을 펴 온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4시간이 넘는 회의시간 동안 거의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다. 윗분 눈치만 살피는 ‘지당장관들’이 국정을 제대로 뒷받침하기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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