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산다

자주감자가 첫 꽃잎을 열고
처음으로 배추흰나비의 날갯소리를 들을 때처럼
어두운 뿌리에 눈물 같은 첫 감자알이 맺힐 때처럼

싱그럽고 반갑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눈물겹고 흐뭇하고 뿌듯하고 근사하고 짜릿하고 감격스럽고 황홀하고 벅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운다

목마른 낙타가
낙타가시나무뿔로 제 혀와 입천장과 목구멍을 찔러서
자신에게 피를 바치듯
그러면서도 눈망울은 더 맑아져
사막의 모래알이 알알이 별처럼 닦이듯

눈망울에 길이 생겨나
발맘발맘, 눈에 밟히는 것들 때문에
섭섭하고 서글프고 얄밉고 답답하고 못마땅하고 어이없고 야속하고 처량하고 북받치고 원망스럽고 애끓고 두렵다

눈망울에 날개가 돋아나
망망 가슴, 구름에 젖는 깃들 때문에



감상)그때 내 엄마는 오십이었고 나는 열세살이었다. 이제 내가 오십이 다 됐고 내 딸은 스물넷이다. 어른이 된 딸을 보고 있자면 오십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나를 눈에 다 넣고나 가셨을까.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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