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환 에스포항병원 뇌·혈관 병원 진료과장·신경과 전문의

62세 김 씨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난 뒤 전날과 다르게 어지러움을 느꼈으며 힘이 빠지지는 않았지만, 보행 시에 균형을 잡기 힘든 증상이 수일간 지속됐다. 이후 뇌 전문 병원을 방문했고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치료 후 증상은 회복됐으나 뇌혈관 상태가 좋지 않아 추후 뇌경색의 재발을 막기 위해 엄격한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게 됐다.

우리말에 어지러움만큼 다양한 증상을 담은 말이 또 있을까?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어지럽다는 말은 ‘어찔함, 눈앞이 캄캄함, 빙글빙글 돈다, 힘이 없다’ 등과 같은 증상을 포괄해 쓰이고 있다. 그만큼 어지러움은 다양한 질환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시적인 증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원인 질환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인구의 10%가량은 어지러움을 동반해 생활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어지러움은 흔한 증상으로 노인 인구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늘어난다. 어지럽지 않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가 어지러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위치 감각을 받아들이는 말초신경부터 시작해 이를 뇌로 전달하는 척수, 위치를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신경, 신체의 균형을 잡는 전정신경과 이를 전체적으로 통합해 조절하는 소뇌와 대뇌의 기능이 모두 잘 유지돼야 한다. 이 중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우리는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어지러움이 있으면 우선 신체 어느 부분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정확한 진료를 바탕으로 확인해야 하며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어지러움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는 전정기관의 문제가 있고 여기에는 이석증, 전정신경염, 메니에르병 등이 있다. 이러한 질환들이 건강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지만, 양상이 매우 심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동반된 구토, 자세불균형 등의 증상 때문에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트린다. 질환에 맞게 치료되지 않으면 만성적인 어지러움으로 진행할 수 있으며 특히 메니에르 질환 등은 청력장애 같은 합병증을 야기할 수 있다.

다음으로 뇌 질환인 뇌경색, 뇌출혈, 뇌종양 등의 질환으로 인해 어지러움이 야기되는 경우다. 증상이 심할 때는 동반된 다른 신경학적 이상으로 전정기능의 문제와 구별할 수 있으나 증상이 초기 또는 경미한 경우 전정기능 문제와 구별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특히 크기가 작거나 전정기능을 조절하는 뇌 부위에 발생한 경우에는 구별하기가 극히 힘든 경우가 있으므로 반드시 뇌 전문병원을 방문해 엄격한 진료와 필요하면 뇌 영상 등의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또 심혈관질환에 의해 발생하는 어지러움으로 심박동이 불규칙한 부정맥이나 일시적인 혈압 저하 등에 의해 어지러움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노인이나 심장질환의 기왕력을 가진 환자들은 특히 주의해야 하며 일시적인 혈압 저하로 인한 어지러움의 경우 충분한 수분섭취와 복용 중인 약물 조절만으로 호전되는 경우가 흔하나 부정맥과 이에 동반된 실신 등의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역시 전문적인 진료와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노인의 경우에는 어지러움의 빈도가 훨씬 잦고 증상이 모호하며 여러 질환이 동반되어 있거나 만성화된 경우가 많아 젊은이보다 한층 주의 깊은 진료와 적절한 치료가 필수다.

진료 시 환자들에게 두통은 참아도 어지러움은 참지 못하겠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만큼 어지러움은 당사자에게 심각한 고통을 끼치며 일상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증상이다. 하지만 조기에 진료와 치료를 시행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환자에게서 어지러움을 완전히 혹은 생활에 지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호전시킬 수 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