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한 변호사.jpg
▲ 강정한 변호사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은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꾼 것으로 이해된다. 라인강 근처에 살던 프랑크족 중 살리아(Salia)파의 클로비스(Clovis)가 크리스트교로 개종하였고 그 계승자들이 위대한 프랑크왕국의 메로빙(Meroving)왕조를 시작한다. 궁재(宮宰) 카를 마르텔(Charles Martel)이 투르푸아티에(Tours-Poitier) 전투에서 이슬람(사라센)군을 격퇴한 후 그의 아들인 피핀(Pipin)이 메로빙 왕조의 왕을 폐위시키고 새로이 카롤링(Caroling) 왕조를 세웠다. 혁명가 카를 마르텔의 손자는 역사상 더욱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바로 샤를먀뉴대제다. 그의 영토가 광대하였듯이 그를 부르는 이름은 각국의 언어로 다양하다(Charlemagne, Charles the Great, Karl der Gross, Carolus Magnus). 샤를마뉴 사후, 그 아들 루이(Louis)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프랑크왕국이 유지되었으나 루이마저 죽은 후에는 내란이 일어났고 그 내란의 결과로 맺어진 베르덩(Verdun)조약으로 프랑크왕국은 동프랑크(독일 부근), 중프랑크(이탈리아 부근), 서프랑크(프랑스 부근)로 삼분(三分)되고 말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독일사(史), 이탈리아사(史,) 프랑스사(史)가 비로소 시작된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어느 역사가도 그 이전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따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 이전의 역사는 세계사나 유럽사의 범위에서 다루면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물론 그들이 그때로부터 그들 나라의 역사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 대하여 어느 누구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이틀 앞두고 맞은 제72주년 광복절에서의 경축사에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고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대하여 자유한국당에서 또 엉뚱한 주장이 나왔다. 국민, 영토, 주권이 근대국가의 3대 요소이기 때문에 1948년이 대한민국의 시작이라는 구태(舊態) 주장이다. 임시정부에도 헌법과 주권과 국민은 있었다. 바른정당은 대통령의 축사가 국민을 둘로 나눈다고 비난하였다. 친일한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평가를 하고, 광복 투쟁을 한 분들 및 그 후손들(3대)께는 그에 상응하는 보훈을 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 무턱대고 국민 편 가르기라고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보수 2야당의 논평들은 사실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런 말장난의 속뜻은 1919년부터 1948년까지의 추악한 그들의 역사를 감추려는데 있다. 결국, 이들 논평은 그들이 과연 누구의 편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친일세력이 기득권세력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린 현실에서 왜 그들이 1948년 이전의 역사를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지우려고 하는 것인지, 그들이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 존재하며 무엇을 대변하고 있는지 다행히 이제 대부분의 국민은 알아차리고 있다.

조국의 평화 통일을 위해서도 대한민국의 출발은 1948년이 아니라 1919년이어야 한다. 그래야 이승만의 1946년 정읍 발언(이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 활동으로 이어짐)이 얼마나 반민족적이고 반국가적인 권력욕의 발로(發露)였는지 알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원래 하나였고 반드시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當爲)를 우리 세대 내에 구현해 내기 위해서도 우리나라의 출발은 단연코 1948년이 아니라 1919년이어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축사는 전혀 새로운 대통령을 맞은 감격스러움의 재확인이었다. 1919년 ‘국민주권(國民主權)’의 이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선열들의 뜻을 정통(正統)으로 삼아 이를 계승하겠다는 ‘우리들 국민의 대통령’에게 ‘뿌리 깊은 친일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은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보수의 땅인 여기 이곳에서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음을 꼭 전하고 싶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