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그에게 대장간쯤 될까
도끼날을 갈 듯
죽은 나뭇가지에다 부리를 쪼아댄다
뚜루루루루룩, 뚜루루룩
소리를 내며 튀는 톱밥보라는 불꽃 같다

새의 몸집이 클수록 소리가 크다
나무는 구멍을 내주고
큰 소리까지 먹느라 화덕처럼 열에 들떠 있다

옹이에다 구멍 파는 건
서툴다는 징조다, 도끼를 내려치는 것처럼
나무의 굳고 무른 그 결을 잘 타야 한다

도끼의 이빨이, 새의 부리가
뭉텅해지고 날카로운 만곡점을 수없이 지나야
누구나 마음의 결을 탈 수 있다

수컷이 후보 나무에 작은 구멍을
몇 개 파놓고 그대를 기다린다
안쪽 벽에다 진흙을 다져 물길을 튼다

그대 마음에 든 구멍은
불에 닿아 있기에 잉태할 수 있겠다

(후략)




감상)‘뭉텅해지고 날카로운 만곡점을 수없이 지나야’ 즈음에 이르러 나는 그 새의 조그맣고 날카로운 부리에 대해 생각한다. 그 작은 구멍 하나 얻으려고 벼리고 기다리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반복했을까. 나는 누구를 위해 방석 한 번 제대로 놓아준 적 있었던가 저 큰 나무 그늘에.(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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