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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호, 호서대교수·법학박사

신보수주의를 대표하는 미국 정치철학자 러셀 커크는 다음과 같이 보수주의를 정의하고 있다. 우선 보수주의는 인간의 양심과 사회가 신(神)의 뜻에 의해서 창조된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다음은 획일성과 평등주의, 공리주의 등과는 선을 긋고 전통의 다양성이나 신비성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또한 사유재산의 긍정과 자유시장의 인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화(change)와 개조(reform)는 동일한 것이 아니고, 개혁(innovation)은 인간을 절망으로 유도하며, 진정한 변화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신의 섭리뿐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커크는 시효개념에 대한 믿음과 공리공론을 즐기는 철학 및 극단적인 합리주의는 계산기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였다. 그는 문명사회는 질서와 계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도덕적 평등뿐이요 정치가 적극적으로 개입해도 사회적 평등의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보수정당의 당인들은 이러한 커크의 주장과 자신의 신념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우파는 유토피아적인 구상에 반대하는 자기 정의에 의존해 왔다. 과거 우파는 인간의 약점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응하는 진보의 전망에 관해서는 회의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변화는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나 저항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사는 찬란한 높은 곳으로 진전하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였다. 대신 정치를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시각은 기독교의 원죄 교리에 기초한 것이다. 우파는 인간 본성의 결함은 극복할 수 없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존 그레이는 프랑스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 마오쩌둥 체제, 현대의 신보수주의를 포함해서 근대 이후의 정치사상과 정치적 현상을 모두 유토피아로 규정했다. 그레이는 선악 이원론적 사고에 서는 기독교적 ‘천년 왕국주의’가 원인이라고 한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진단에 동의 하는지를 자문해 보기 바란다.

국제정치의 중심인 미국은 가치에 관한 논쟁의 기회가 끊임없이 제공되는 사회이다. 보수재건을 위해서는 미국처럼 가치에 관한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정제되지 않는 망발을 내 뱉는 순간 보수는 나락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보수주의라는 정치사상은 그것 자체가 가치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사상으로서 보수주의는 여전히 가치 지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보수주의는 언필칭 사회적·정치적으로 가치 내재적일 때 지지를 얻고 본질적인 의미를 가질 것이다. 따라서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사상투쟁을 기치로 내세운 것은 환영 할만하다.

원래 보수주의는 사회나 정치의 형태가 지역과 시대와 같은 상황적 요인에 의해서 좌우되며 그 전개가 다양한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래서 각국의 보수주의의 차이를 재삼 강조하기보다는 그 근저에 깔려있는 본질적인 공통점에 주목해야 한다. 서양의 정통 보수주의는 유대기독교적 도덕질서에 복종을 요구하고 세속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이 생각에 따르면 자유지상주의는 비판 대상이 된다. 그러면 자유의 비중이 저하되기 때문에 자유를 무엇에 대해서 얼마나,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가 과제로 부상하게 된다. 이때 전통주의는 도덕이나 윤리를 강조하는 동시에 정치에서는 분권주의와 다원주의를 주장하며, 경제에서는 시장기구를 긍정한다. 결국 보수와 진보는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자세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이제 한국의 보수정당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다시 뒤돌아보라.

종교계 좌파들조차도 근대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성서해석을 허용하고, 낙태 등에는 부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빈곤문제나 평화문제에 관해서는 리버럴한 위치에 있다. 종교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도 왜 신과 종교, 신앙을 부정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며 그들은 이에 대해서 나름대로 논리를 준비하고 있다. 보수재건을 위해 한국의 보수정당과 보수주의자들도 이런 발상의 전환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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