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비에 빗소리를 꿰매느라 여름의 더위를 다 써버렸다. 실수로 떨어진 빗방울 하나를 구하기 위하여 안개가 바닥을 어슬렁거리는 아침이었다.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를 주워들었다. 아무도 내 발자국 소리를 꺼내가지 않았다.




감상) 사방 길이와 높이가 약 10여 킬로미터인 바위를 백년에 한 번씩 고운 비단천이 스쳐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겁(劫)이라 한다. 돌멩이 하나가 빗방울이 될 때까지 우리가 아낀 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내 말이 그대를 스쳐 사라지는 순간에도 빗방울은 떨어지고 있으니 그 순간이 모여 언젠가는 겁을 이룰 것이니.(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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