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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하 도의원·시인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7년 정사년 뱀띠 해에는 우리에게 주목받는 여러 이슈가 가득한 한해였다.

세계역사의 물줄기를 뒤흔든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에 의한 극단적 긴장과 대립이 형성된 냉전체제의 시발이 된 해로 기록되고 있고 종교적으로도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성모가 발현한 엄청난 의미를 지닌 해이기도 하다. 또한, 1917년은 대한민국경제를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견인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더불어 한 세기 전 1917년에는 우리에게 영원한 청년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는 순수함으로 무장된 저항시인 윤동주가 태어난 해이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영화 ‘윤동주’가 제작돼 혼자였지만 하늘의 수많은 별과 함께했던 그의 예사롭지 않은 삶을 조명하고 있으며 여러 출판사에서 초판본과 흡사하게 만든 목각본‘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시부분 판매량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연극 ‘윤동주, 달을 쏘다, 가 만들어져 대학로를 들썩이게 하였고 그의 삶을 랩으로 만든 노래는 음원 사이트 1위를 휩쓴 바 있다

또한 서울 서대문구를 비롯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런저런 연고를 만들어 보석처럼 고결한 문화브랜드 윤동주 마케팅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고 순례길 탐방과 심포지엄을 비롯해 음악회, 문학의 밤 등의 기념행사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아직도 청춘이 다하지 않아 늙지 않는 그 이름 윤동주, 젊은 나이로 순국해 청년 정신의 상징이 된 윤동주가 전 국민의 폭발적인 인기로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살아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1917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항일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1945년 2월 16일 조국의 독립을 6개월 앞두고 후쿠오카 교도소의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스물여덟 무명의 청년으로 생을 마감한 윤동주는 이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거듭 태어나 전 국민의 폭넓은 지지와 특히 20대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는 것은 주목할 만 한 일이다.

지난 1980년대 중국의 시골 야산에서 윤동주의 무덤을 찾아냈고 윤동주 육필원고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윤동주 연구가 오무라 마쓰오 와세다 대학 명예교수는 윤동주를 가리켜 “천재인 동시에 마음이 따뜻한 고뇌하는 시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이 우리 국권을 강탈한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윤동주 시인의 작품에도 여느 청년과 다름없는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과 순수하고 해맑은 청춘의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아리랑을 부르며 영원성에 당도하고자 했던 고결함과 흔들리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시대를 관조했던 한 젊은 시인의 생애가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 험한 세상에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시를 다듬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남긴 시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성찰을 담은 순결한 영혼으로 온몸을 던져 불의에 저항했던 윤동주의 생애를 보면서 짧지만 짧지 않았고 혼자였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은 삶을 비추는 거울, 인생은 유한하고 생자가 필멸하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떠난 한 인간의 존재를 보면서 그 육중한 삶의 무게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한 번쯤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역사는 슬픔과 아픔들을 간직하며 전진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다시 미래를 향해 흘러간다.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에 우리 모두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순수한 청춘을 만나 함께 고뇌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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