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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인간의 본성에는 정착(定着·일정한 곳에 머물러 삶)과 방랑(放浪·이리저리 떠돌며 삶)의 욕망, 혹은 충동이 공존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지라 방랑보다는 아무래도 정착이 후한 대접을 받습니다. 정착을 잘하는 이들이 성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제가 젊어서 타지에서 수년간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웃집 할머니에게 지나가는 말로 들은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한곳에 오래 살아야 복 받는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무슨 연유에서 저와 제 처에게 그 말씀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변에서 저와 비슷한 입장이었던 젊은 부부들을 많이 보셨을 것이라는 짐작만 합니다.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아이들이 커서 학교 갈 나이가 되면 홀연히 이사를 가는(주로 서울로) 당시의 세태를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몇 년 만에 대구로 다시 이사를 온 저는 복 받을 일이 아예 없었습니다. 팔고 간 집값이 크게 올라 크게 고생만 했습니다. 다만 집 주변 야산에 넓은 과수원을 가지고 계셨던 그 할머니는 후일 큰 보상을 받으셨습니다. 6·25 때 피난 내려오셔서 그때까지 그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터 잡고 사셨는데 그곳이 근자에 신시가지로 개발되면서 큰 재물을 얻으셨습니다. ‘한곳에 오래 살아야 복 받는다’라는 말씀은 다름 아닌 자기 계시였던 것입니다.

요즘은 제가 그 말을 자주 합니다. 직장을 자주 옮기는 속가 제자들에게 할머니 말씀을 전합니다. 학교 제자들은 모두 교사이니 그 말을 들을 일이 없습니다. 요즘은 교직이 선호되는 때라 이직률이 극히 낮습니다.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경우 빼고는 아예 교직을 떠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게 검도를 배우는 속가 제자 중에는 여기저기 직장을 옮기는 것이 다반사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보통 1년간 재직하면 아주 오래 있는 편입니다. 열심히 도장에 나오는 남자 제자 중에 그런 친구가 있어서 ‘한곳에 오래 살아야 복 받는다’라는 진리의 말씀을 그 자세한 내력과 함께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그 말씀을 듣고 대오각성, 경솔히 이사 오지 않고 할머니 과수원을 3분의 1이라도 인수했다면(그때 그런 이야기가 잠깐 있었습니다) 지금쯤은 조물주도 부러워한다는 건물주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짓 허풍도 떨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 조언에 충실했던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남다른 혜안 덕분이었는지, 그 제자는 지금 복 받을 일에 크게 사기가 부풀어있습니다. 공사(公社) 기간제 임시직이었던 코디네이터(업무 보조) 자리가 정규직으로 전환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본디 1년 임기였지만 2~3년 동안 박봉을 참아가며 열심히 일했는데 별안간 때가 찾아왔습니다. 운세의 관성으로 보아 저간의 기여가 인정만 된다면 충분히 앞으로 있을 정규직 전환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평생을 정착으로 일관해 온 저의 입장에서는 간혹 방랑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방랑은 사회 부적응증과 함께할 때가 많습니다만 간혹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 가운데서도 자신의 방랑 충동을 마음껏 발산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거에 직장을 걷어차고 나와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신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들을 보면 그동안의 미련했던 정착의 세월이 공연히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기마다 능력과 소임이 있는 법, 자기에게 주어진 코스에 보다 충실히 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이제 제게 주어진 지구별 여행도 어렴풋이나마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남은 여행기라도 알뜰하게 적어서 다음 여행객들에게 좋은 참고가 되기만을 진심 바라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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