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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서원-창간특집] 1.안동 도산서원

도산 자락 따라 이어지고 있는 퇴계 선생의 올곧은 가르침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8월27일 20시17분  
도산서원
한국의 서원은 400여 년을 지속해 온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자산이자, 정신문화의 산실이자 예학의 산실이다. 이 때문에 서원은 인류 전체가 보전할 세계유산으로서 전통문화의 가치를 보존할 명분이 충분하다.

나아가 겸손과 절제를 추구하는 선비정신과 자연과 더불어 심신을 단련하고 수양하며 학문연구를 통해 인류애를 실천하고자 한 자아 성찰과 자기 고뇌의 현장으로 학문적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세계적인 유산이다.

최근 문화재청은 한국 성리학 발전과 서원 건축유형을 대표하는 전국 9개의 서원을 2018년 세계유산 최종 등재신청 대상으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한국의 서원’ 9곳은 내년 1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1년 반 동안의 심사를 거쳐 2019년 7월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번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재추진을 계기로 한국 서원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충족하는 세계 유산적 가치를 살펴보고, 그 대상에 포함된 대구·경북의 대표적인 서원인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도동서원의 문화적, 세계사적 가치를 되새겨 본다.

퇴계 이황 영정
△ 도산서원과 퇴계 이황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자리한 도산서원(사적 제170호)은 대한민국 대표 서원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서원은 1574년(선조7) 퇴계 이황(1501~1570)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서원 경내는 동서재(東西齋)와 전교당(보물 210), 위패를 모신 상덕사 등 다양한 건축물로 구성돼있다. 1575년(선조 8) 한석봉의 글씨로 된 ‘도산(陶山)’이라는 사액을 받음으로써 영남 유학의 중심이 됐다.

서원 안에는 약 400종 4천여 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 그리고 퇴계 선생의 유품이 남아 있다. 도산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소수서원·숭양서원 등과 더불어 온존했던 곳이다.

퇴계는 여러 벼슬을 거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서당을 짓고 학문 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썼다. 그는 기대승과의 유명한 사단칠정 논쟁을 통해 당대 성리학계의 최고 수준임을 입증한 데다가, 서경덕의 주기설이나 양명학에 대해 주자설에 의거 철저히 논변하여, 주자 성리학의 정통성을 천명함으로써 이 시기 사림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았다.

아태 기록유산에 등재된 도산서원 편액
도산서원은 퇴계가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영역과 그가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퇴계는 일찍이 서원이 세워지는 곳은 존경받을 만한 선현의 일정한 연고지여야 하고, 동시에 사림들이 은거하여 수양하며 독서에 좋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물들은 한결같이 간결하고 검소하게 꾸며져 퇴계의 인품을 잘 반영하고 있다. 도산 자락 산수가 빼어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입지조건을 갖춘 도산서원은 성리학의 가르침에 의해 엄격하고 질서 있게 배치되었으며 이러한 건축의 특성은 절제되고 단아함을 보여준다.

도산서당은 퇴계가 1557년 57세가 되던 해에 도산 남쪽의 땅을 구해, 터를 닦고 집을 짓기 시작해 1560년에 낙성한 건물이다. 세 칸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의 남향 건물인데, 서쪽 한 칸은 골방이 딸린 부엌이고, 중앙의 온돌방 한 칸은 그가 거처하던 완락재이며, 동쪽의 대청 한 칸은 마루로 된 암서헌이다.

이황은 서당의 동쪽으로 치우친 곳에 작은 연못을 파고, 거기에 연(蓮)을 심어 정우당이라 했다. 정우당 동쪽에는 몽천이란 샘을 만들었으며, 샘 위의 산기슭에는 평평한 단을 쌓아 암서헌과 마주 보게 하고, 그 위에 매화·대나무·소나무·국화를 심어 네 가지 벗으로 삼아 절우사(節友社)라고 불렀다.

시사단
암서헌 대청에서 정우당, 절우사를 지나 낙동강으로 경관이 이어지게 한 것은 궁극적으로 자연과 합일하려는 그의 성리학적 자연관을 잘 나타낸다.

강학공간은 높게 조성된 기단 위에 서 있는 전교당(典敎堂)을 중심으로 그 앞마당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서로 마주 보며 좌우 대칭을 한 배치를 하여 강학 공간으로서의 규범을 보이고 있다. 강당인 전교당은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건물이다.

제향공간은 강당 뒤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사우인 상덕사(尙德祠)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건물이다. 전면 반 칸은 외부로 트인 툇칸을 형성했고, 그 뒤 한 칸 반은 우물마루를 깔아 내부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상덕사 내부에는 북벽 중앙에 남향하여 이황의 신위가 주향(主享)으로 모셔져 있고, 동쪽 벽에는 서향하여 조목(1524~1606)의 위패가 종향(從享)으로 모셔져 있다. 도산서원의 향례(享禮)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중정일(中丁日)에 행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열린 도산별과 한시백일장 진행 모습.
△조선 정조가 직접 시행했던 ‘도산별과’ 재현

도산서원에서는 매년 조선 시대 유일하게 지방에서 본 대과(大科)시험인 ‘도산별과(陶山別科)’ 재현 행사가 열린다. ‘도산별과’는 퇴계 선생을 참 선비로 추앙했던 정조의 뜻에 따라 1792년 시행됐다.

재현행사는 도산별과가 행해졌던 음력 3월 25일, 전국 한시 백일장으로 치러지고 있다. 전교당 한존재에서 먼저 고유를 하고 개회식을 하며, 이후 특설무대에서 정조의 치제문을 축관이 독송하고 별유사들은 치제문을 상덕사에 봉안한다. 이어 어제 게시를 위해 취타대와 파발대 행렬, 정조의 어제 개시, 과거재현행사 순으로 열린다.

안동시는 도산별과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이 지역에 전해진 전통적인 문화 자산을 꾸준히 발굴해 ‘감동의 문화자산’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서원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알리고 있다.

조선후기 문인화가 강세황이 그린 진경산수화 도산서원도(보물522호)
△ ‘선비정신’의 요람,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지난 2001년 ‘퇴계 탄신 500주년 행사’를 계기로 절약한 행사예산과 지역 유림의 뜻을 모아 퇴계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청량산이 한눈에 보이고 부근에는 도산서원 계상서당 등 퇴계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어 선비수련을 위한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2002년 첫해 224명이던 수련생은 지난해 10만5천 명을 기록, 15년 만에 460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6월 제2원사(院舍) 준공으로 하루 150∼200명 수련생을 수용할 수 있어 올해는 13만 명의 수련생을 배출할 계획이다.

수련원 진입 입구 퇴계종택을 지키고 있는 퇴계 16대 이근필(86) 종손은 선비수련원 수련생들에게 ‘종손과의 대화의 시간’을 통해 퇴계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도산서원 을미년 춘계향사
퇴계 16대 이근필 종손과의 대화 시간
중국 악록서원에 전시된 도산서원 모형
도산서원 선비수련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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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명 기자

    • 오종명 기자
  • 안동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