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 시인. 실천문학사 제공
공광규(57)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파주에게’(실천문학사)를 냈다.

1986년 등단 이후 줄곧 한국사회의 현실과 모순을 담담하게 풀어내 온 시인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촛불정국을 지나면서는 자신을 포함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인 61명의 작품을 모은 시집 ‘천만 촛불 바다’를 펴냈다. 촛불집회 경험과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발언은 에두르지 않는다.

“퇴근길에/ 청계천변 난간에 노란 리본을 묶었다/ 리본에 검은 글씨로/ ‘미안하다’고 썼다// 버린 배를 사들여 와 구조를 변경하고/ 여객 정원을 늘려서 돈을 벌려는/ 자본을 허가하는 나라// 배 떨림이 심하다고 문제 제기하는/ 정직한 노동자를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는 나라// 승객의 안전보다/ 선박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나라// 비정규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자주 바꿔치는 나라/ 자본 중심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나라” (‘노란 리본을 묶으며’ 부분)

시인은 임진강변에서 군복무하는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며 철새들이 날아오르는 광경을 본다. 철새들은 분단현실을 비웃듯 철책선을 넘어갔다가 돌아온다. 표제작 ‘파주에게’는 남북한의 ‘바보’들을 내려다보는 철새의 시선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철책선 주변에 철새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가 “자유를 보여주려는 단군할아버지의 기획”이라는 데까지 나아간다.

“저 한심한 바보들/ 자기 국토에 수십 년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는 바보들/ 얼마나 아픈지/ 자기 허리에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어 보라지/ 이러면서 새떼들은 세계만방에 소문 내겠지/ 한반도에는 바보 정말 바보들이 모여 산다고” (‘파주에게’ 부분)

고향인 충남 청양에서의 어린 시절 경험을 형상화한 작품이 여럿이다. 어려서 세상을 떠난 동생을 가마니로 둘둘 말아 묻은 기억을 떠올리고(‘애장터’)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쓸쓸해진 시골집을 돌아보며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 고향집에는 늙은 어머니마저도 없으니/ 수돗물도 끊기고/ 따뜻한 쌀밥도 국도 반찬도 없다/ 고향에 오면 국물도 없는 인생이 된 것이다// (…)//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아득한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는 수십 년을 혼자 울었을 것이다/ 혼자 고독에 울다 위가 굳어/ 폐목으로 쓰러진 것이다” (‘빈집’ 부분)

시인은 시집 뒤쪽에 해설 대신 실은 산문에서 “시를 쓰다 보니 유년 체험들이 시에 끊임없이 재현되고 굴절되어 나타난다”며 “시라는 것이 결국은 자기 체험의 재구성이나 변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142쪽. 1만원.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