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즐거운 날이었어 그날 오후
시가 되지 않는 절망을 안고
3·15 의거탑 앞을 지나다가
홀로 자란 참깨나무 하나를 보았어

어디서 씨앗이 날아왔을까
어떻게 홀로 열매까지 맺었을까
나는 손끝으로 참깨 열매를 툭툭 쳐보았지
아아 하늘 아래 이런 즐거운 일이 있나

순식간에 터져나오는 까만 참깨들
그해 삼월의 마산처럼
당당히 밀려 나오는 참깨들의 고함소리
그렇지 암 그렇지

열려라 참깨 열려라 참깨
누가 그렇게 말하지 아니해도
때가 되면 자연히 터져나와야지
자랄대로 자랐으면

(후략)




감상) 잊기를 즐겨하는 시대. 앞으로 걷기만을 희망하는 시대. 꽃이 새싹이었던 때를 잊었다면 그렇게 해마다 똑같은 새싹을 피울 수 있었을까. 우리는 아무도 새싹이었던 때를 기억하지 않으려하고 꽃피우기 위해 아팠던 때를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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