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TV반송 중 힐러리와 샌드스 두 후보 간에 난데 없는 논쟁이 불거졌다. 힐러리가 자신의 외교자문인 키신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샌드스가 반박했던 것이다. “나는 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해악을 끼친 국무장관 중 한 명이었다고 믿는다” “당신이 그에 대해 무슨 불평을 한들 그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유지해온 것이 미국에 매우 유용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샌드스의 반격에 대한 힐러리의 반박이었다.

키신저는 닉슨과 포드정부에서 국무장관을 하면서 ‘키신저 외교’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했다. 특히 포드 재임 기간엔 대통령의 외교권을 거의 대신 수행, 미국 외교정책에 전권을 행사했다. 키신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소련과의 전략무기 제한협정을 성사시켜 미-소 냉전 관계를 완화시키고 극비에 중국을 방문, 미-중 국교정상화를 이끌어 내 ‘죽의 장막’ 중국의 문을 열개했다. 베트남 문제도 유연하게 처리, 휴전협정의 기초를 닦은 후 아랍-이스라엘 간의 휴전을 성공시키는 등 세계 평화의 촉매제 역할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칠레의 좌파정권을 몰아내고 독재자 손에 넘기고, 주권국가인 캄보디아를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한 키신저의 냉혹한 외교는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키신저는 “국제관계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단지 영원한 국가이익만 있을 뿐이다”면서 이 모든 것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에게는 적도 아군도 없었다. 어제의 적을 오늘의 아군으로 끌어드리고 오늘의 아군을 내일 내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키신저에게 100% 확실한 것은 없었다. 오직 국익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키신저 외교술은 최선을 거머쥐지는 못할지라도 최악을 피하게 했다.

최근 키신저가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북한 정권의 붕괴 이후 상황에 대해 미국이 중국과 사전에 합의할 수 있다”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조언했다고 한다. 미국이 국익을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았던 키신저의 훈수가 예사롭지 않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