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는 필요할 때 오르는 물건이다
다리라고 밟는 그것이
실은 다리가 아니라 사다리의 어깨임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사다리는 그의 어깨를 누군가의 발밑에 내어준다
누군가의 어깨를 밟을 때는
그 어깨의 부실 여부를 탓하기 앞서
자신의 체중과 체적에 유의해야 한다

열 칸짜리 사다리를 네 칸만 올라가도 될 때가 있다
너무 높이 올라가서는
내려갈 사다리가 보이지 않기도 하다는데
(일부러 보지 않는다는 설도 있다)
적절한 위치까지 오르는 것만큼
알맞은 때에 내려올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사다리는 내려갈 때 더 필요한 물건인지도 모른다

전망을 보기 위해 사다리를 오르는 일은 없는데
전망에 도취하여 왜 올라왔는지 잊는 경우가 있다
못을 박을지 못을 뽑을지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더 절실한 그 누군가 올라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을 땐
그 즉시 내려오는 것도 중요한 미덕이다

(후략)




감상) 빗방울이 베란다 난간에 옹기종기 붙어있다. 저것이 거꾸로 떨어지는 거라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지만 저것들에게 저 모양새는 편하게 잘 앉아있는 일인지도 모를 일. 우리가 하늘이라 생각하는 것이 저들에게는 땅일지도 모를 일 그러니까 잘 떨어지는 것이 잘 올라가는 일일지도 모를 일.(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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