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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걷다] 11. 영일만의 기적, 포스코의 역사 속으로

청아한 풀벌레 하모니 들으며 전설과 역사의 숨결을 느끼다

이순화 시인 등록일 2017년09월03일 21시13분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에서 바라본 영일만과 포스코 풍경
흥환보건소 앞이다. 어느새 푹푹 찌던 여름은 한 풀 꺾이고 시원한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 흥환마트 문간에 해파랑길 스탬프 찍는 곳이 보인다.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조여 매고 16코스 시작점을 알리는 도장을 찍는다.

해파랑길 15코스와 16코스가 겹쳐지고 있다. 흥환교를 지나 바로 오른쪽 길, 금오산으로 가는 방향이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바닥이 흥건하다. 산골 마을 집집마다 축축 늘어진 감나무 가지가 담을 넘고, 개울가 풀숲에서 가을 풀벌레 소리가 청아하다. 누가 벌을 치는지 밭머리에는 벌통들이 나란히 줄을 서 있다. 해파랑 길에서 보기 드문 목가적인 풍경이다.

높은 산을 양옆으로 둔 좁은 길에 벚나무가 울창하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길이겠다. 전통고찰 진불사 팻말 앞에서 금오산 방향, 오른쪽 오르막길을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산길로 들어서니 온데 칡꽃이다. 산은 가을의 향기로 가득 넘친다. 마을 주민이 멧돼지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길에 멧돼지는 아니고 토끼똥이 바닥에 까맣다. 얼마를 더 올라왔을까.
해파랑길에서 만난 벌통
일월동, 연오랑과 세오녀
동해면 상정리를 향한 팻말이 보인다. 해파랑길 15코스 길과 나눠지는 지점이 바로 여긴가 보다. 이제부터 해파랑길 16코스 독자적인 길이다. 오른쪽 길로 접어드니 깎아지른 절벽에 주상절리다. 해안가에서만 보던 절리를 산중에서 볼 수 있다니 경이롭다. 아니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조화에 경외감마저 든다.

산릉선을 타고 몇 굽이나 돌았을까. 서늘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오늘은 예고에도 없던 비다. 우비를 챙겨온 게 천만다행이다. 공동묘지를 지나는데 비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등골이 오싹하다. 귀신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 공원묘지를 지나자 대숲이다. 서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또 공동묘지다. 저 앞에 월성 손씨 묘 표지석이 을씨년스럽게 빗속에 서 있다.

해파랑길 붉은 화살표가 잡목 우거진 숲을 가리키고 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공동묘지를 오른쪽에 끼고 풀숲을 헤쳐 나간다. 억센 나뭇가지들이 길을 막고 허리를 넘는 시퍼런 풀들이 틈을 내주지 않는다. “예초기라도 들고 왔어야하나” 동행의 말에 나는 조선낫을 생각한다. 나뭇가지를 쳐내려면 조선낫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금오산으로 올라가는 비에 젖은 칡꽃길
금오산에서 만난 주상절리
가까스로 숲을 빠져나오자 영일만을 옆구리에 끼고 도는 임곡리 차도다. 시골밥상 간판이 커다랗게 눈에 들어온다. 참았던 숨이 저절로 터진다. 해파랑길 표시 화살표가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서려있는 도구해변을 가리키고 있다.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태양설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157년 연오가 해초를 따다 바위에 실려 일본에 가서 왕이 됐다. 남편을 찾아 헤매던 세오 역시 바위를 타고 일본에 가서 귀비가 된다. 그 후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고, 기이한 현상에 일관을 불러 점을 치고, 세오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냈다는 이야기다. 왕은 그 비단을 귀비고(貴妃庫)라는 창고에 보관했다고 한다.
임곡리, 연오랑 세오녀길
임곡리, 연오랑세오녀길
연오랑과 세오녀는 제철 기술의 지도자라는 주장도 있다. 제철 기술자가 신라를 떠난 것은 해와 달이 빛을 잃을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름에 오(烏)는 검다는 뜻으로 숯을 사용하므로 이들의 얼굴이 검다는 의미다. 세오녀의 ‘세(細)’는 옷을 짜다의 뜻으로 이들이 제철 기술과 함께 일본에 전해준 문명이 직조 기술이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남기고 있다.

해수욕장에서 바다시청을 만나다니, 백사장에서 보는 낯선 풍경이다. 여기서 여름파출소 겸 해상 구조대 일을 본다고 한다. 도구해변 데크길은 도중에 공사 중으로 막아놓았다. 그래서 길을 돌려놓은 것일까. 굴다리를 빠져나간다. 인도와 차도가 따로 없는 길이다. 포항동성고등학교를 왼쪽에 두고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석곡도서관을 지나 공항삼거리, 차들이 많다. 자동차 경적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나는 더, 더 갓길로 바싹 붙어 선다.
해파랑길 16코스 스탬프 찍는 곳.
청림동 청포도터널길
해를 맞이하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일월동(日月洞)이다. 삼국유사의 본고장임을 알리는 표석이 길옆에 서 있다. 곧이어 청포도문학공원 안내판이다. 오른쪽 자동차정비코너를 끼고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공원 사방에 청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탐스럽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나도 모르게 이육사의 ‘청포도’를 외고 있다. 온데 농익은 포도향이 철철 넘치고 있다.

청포도문학공원을 나와 청림동 대로변이다. 인도에 가로수가 포도나무터널을 이루고 있다. 하니 비너스, 캠벨, 진옥, 세네카.....이것은 다 포도나무 품종이다. 구간마다 다른 품종의 포도나무터널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달콤한 향기에 취해 그동안의 피로도 다 씻는다.

물이 차다는 냉천교를 건너, 왕복 8차선 도로가에 그늘 시원한 플라타너스 길이다. 늠름한 자세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플라타너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가 생각나는 길이다.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2)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포스코 높은 담장. 길이 지루해질 무렵 나타난 저기, 대로 건너 포스코 역사관이 보인다. 문을 들어서니 제일 먼저 조선시대 철제솥이 방문객을 맞는다. “철은 우리에게 사업이 아니라 사명이었다.”는 청암 박태준. 영일만의 기적을 이뤄낸 포스코의 역사를 천천히 둘러본다.

역사관을 나와 동촌연못가, 등록문화재 제217호로 지정되어있는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앞이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용광로다. 우리나라 제철기술과 제철공업 발달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는 산업시설물로 역사적, 산업가치가 높은 시설물이다. 그의 장엄한 용모 앞에 카메라 초점을 맞춘다.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맛집: 흥환보건소에서 차도 건너 ‘해동회타운(054-291-8266)’. 특미로 내놓은 고등어추어탕6,000원.

흥환마트 맞은편에 있는 ‘추억의 연탄불고기(054-292-1036)’. 고추장불고기와 황태해장국.



△숙박: 영일만과 포스코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주변 야경이 아름다운 곳. ‘아무르?모텔(054-291-8266)’. 유럽 중세풍의 건물로 외벽도 내벽도, 침실도 온통 하얀색이다.



△주변 둘러볼 만한 곳: 삼국유사의 설화를 근거로 한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호미반도 해
▲ 글·사진 이순화 시인

안 둘레길 다섯 개 코스 구간 중에서 1코스(연오랑세오녀길) 끝 지점, 영일만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도구해변에서 청룡회관을 지나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까지 총 길이는 6.1km다.

동해면사무소 뒤에 있는 ‘일월사당(日月 祠堂)’. 매년 연오랑세오녀 축제와 함께 일월제를 지내고 있다.

포항 해병대 부대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일월지’. 옛날에 이 연못가에 일월사당이 있었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일본 황실 사람들이 연오랑세오녀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일제시대 때 사당과 제단은 헐고 연못도 일부는 메웠다고 한다. 사전에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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