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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시인

인간의 심연엔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DNA가 있는지도 모른다. 짬짬이 펼치는 세계사를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인류의 기원은 동아프리카 대지구대라는 설이 유력하다. 직접적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이래, 대략 삼만 년 전쯤 ‘그레이트 저니(Great Journey)’라 불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기후가 하강한 지구촌 환경을 극복하고자 대이동이 이뤄진 것이다.

당시 빙하기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130m 정도 낮았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는 육지로 연결됐고, 검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동해도 거대한 호수에 불과했을 뿐이다.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수렵·채집 생활이 정착 문화로 전환되고, 반만년 전부터 큰 강 유역을 중심으로 4대 문명이 탄생했다.

우리의 아득한 선조들은 자연의 시련을 피해 전진하면서 어떤 상념에 젖었을까. 단순한 삶의 영위만이 아닌 하늘 저 너머의 호기심도 가졌을까. 미지의 세상을 향해서 한발씩 나아가는 그들도 설렘과 두렴이 교차했으리라. 인류의 역사는 어떤 동기이든 이동 혹은 여행을 통해서 확장됐다. 그 디엔에이가 면면히 이어진 후손들 덕분에 인천 공항이 북적이는 건 아닐까.

‘한 달에 한 도시’라는 책을 출간한 신혼부부 얘기가 기억난다. 결혼과 더불어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해외로 내달은 젊음의 과감한 탈출기. 그것도 두 해 남짓한 장기간 외유다. 세계의 주요 도회지서 한 달간씩 머무르는 24개국 탐방을 완수했다고 한다.

이런 색다른 무용담을 접하면 한마디로 부럽다.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를 전전하는 살뜰함은 알콩달콩 벽지로 도배됐으리라. 껍데기만 훑어보는 주마간산을 벗어나 이국의 속살을 음미하는 진짜 유람인 까닭이다.

영화 ‘백 투 더 퓨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벌어지는 모험을 그렸다. 1985년 개봉작으로 30년 전인 1955년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후속편은 30년 후인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묘사했다.

내겐 7번 국도를 지나는 감회가 추억을 더듬는 여정이다. 타임머신을 탄 주인공 마티처럼 그때의 광음을 건들진 못해도 회상의 계기는 주어진다. 부산 울산 경주 포항 영덕을 따라서 지난 세월의 딱지들이 켜켜이 앉았다.

이십대 막바지를 보낸 부산 시절은 힘들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야근은 다반사였다. 주인집 정원에 가득한 분재와 녀석들 장난질하던 용두산 공원의 비둘기 떼가 떠오른다. 주경야독 승진 첫 발령지인 울산은 즐거웠다. 상후하박 때인지라 급여가 대폭 올랐고 처음으로 마이 홈을 장만했다.

울산에서 경주로의 발령은 그 자체로 행운이다. 한 번쯤 살기를 소망한 천년고도. 가족들과 남산을 즐겨 나들이했다. 돌아보면 애들한테 미안한 선택이다. 여차하면 정상에 올랐으니 단조로운 산행이 지겨웠을 테다. 십여 년째 거주하는 포항은 내 인생의 후반기 베이스캠프. 직책이 있는 탓에 행동반경도 넓었다. 연분홍 복사꽃이 강렬한 영덕은 삼 년이나 근무했다. 죽도산 산책로의 밤바다에 얼비친 보름달 풍경은 장관이다.

직장을 다니며 수차례 이사를 다녔다. 마치 선거 운동하듯이 영남 지역을 누볐다. 특히 7번 국도변 고장을 거슬러 오르는 동선은 불가의 인연처럼 다가온다. 기회가 된다면 아들딸을 데리고 옛적 살았던 전셋집을 둘러볼 예정이다. 그리곤 카페에 앉아서 아련한 정담을 나눴으면 싶다. 함께한 빛바랜 흑백 사진 같은 순간들이 행복했음을 전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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