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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와 판사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9월04일 19시36분  
후삼국시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10여 세 때부터 승려생활을 했다. 어느 날 까마귀 한 마리가 궁예 앞에 ‘왕(王)’자가 새겨진 부적을 떨어뜨리고 날아갔다. 소년 궁예는 이것을 보고 장차 왕이 될 것이라고 기대에 부풀었다. 청년으로 성장한 궁예는 자기 힘으로 천하를 호령하고 싶어졌다. 승려생활을 청산하고 북원의 도적 양길의 수하로 들어갔다. 용맹이 뛰어난 궁예는 장군으로 추대돼 연전연승, 강원도 일대를 차지하는 맹주가 됐다.

궁예는 왕건이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자 송악군을 수도로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웠다. 양길을 물리치고 영토를 평양까지 확장, 신라 북부를 거의 차지하자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고치고 자신을 미륵불이라 칭했다. 맏아들에게는 청광보살, 막네에겐 신광보살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애꾸눈에 대한 원망과 열등의식으로 마음의 상처가 컸던 궁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자 점점 포악해졌다. 남을 의심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심해진 궁예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는 ‘미륵 관심법’을 터득했다며 멀쩡한 사람에게 반역죄를 씌워 죽이기를 예사로 했다.

궁예의 아내 왕후는 남편의 잔악한 행동을 염려, 간곡히 간했으나 궁예는 오히려 왕후의 불륜을 의심했다. “너는 다른 사람과 간통하지 않았느냐” “무슨 당치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관심법’으로 너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다. 보지 않아도 다 알고 있으니 바른대로 말해라” 왕후가 억울하다고 하소연하자 분노가 폭발한 궁예는 철장으로 황후를 내리쳤다. 그래도 화가 안 풀려 불을 달군 쇠꼬챙이로 황후의 은밀한 곳까지 온몸을 찌르고 지졌다. 보다 못한 두 아들이 말리자 “네놈들도 누구 자식인지 알 수 없다”며 두 아들마저 죽였다. 결국 왕건을 왕으로 추대한 군신들의 쿠데타로 도망치던 궁예는 도중에 살해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5년 징역형을 선고한 1심 재판에서 판결 이유가 마음 속으로 주고받은 ‘묵시적 청탁’이다. 궁예의 ‘관심법’을 떠올리게 하는 재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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