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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왕과 안보위기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9월11일 18시53분  
“만일 폐하의 인자하심이 멀리 가없는 데까지 미친다면 속히 장수를 신의 나라에 보내 주십시오. 마땅히 저의 딸을 후궁에서 모시게 하고 아울러 아들을 보내 외양간에서 말을 기르게 하며 감히 한 치의 땅도 한 명의 백성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고구려의 침공 압박에 시달린 백제 개로왕이 중국 북위의 효문제에게 구원을 요청한 국서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군사만 빌려준다면 딸을 후궁으로 보내고 아들을 마굿간지기로 넘겨준다고 했을까.

이같이 비굴한 조건을 내걸어 가면서 원군을 구걸했지만 북위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 후 개로왕은 고구려가 보낸 첩자 도림의 꾐에 빠져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여 국고를 탕진시켰다. 고구려의 백제 국고 고갈작전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개로왕 29년 9월 드디어 고구려 장수왕은 3만 명의 군사를 동원, 백제를 침공했다. 도성이 함락 위기에 처하자 개로왕은 태자를 불러 자신이 어리석었던 것을 후회했다.

“내가 어리석고 밝지 못해 간사한 사람의 말만 믿고 그를 중히 썼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백성은 쇠잔하고, 군사는 약하니 비록 위태로운 일이 있어도 누가 기꺼이 나를 위해 힘써 싸우겠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개로왕은 비로소 자신이 국정을 잘못 다스린 것을 인정하고, 백성마저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현실에 대해 참회했다. 이미 국고는 바닥나고 백성의 신뢰를 잃었으며 적군은 코앞까지 밀어닥쳐 한 가닥 희망조차 찾을 수 없었다. 개로왕의 선택은 이제까지 저지른 잘못을 책임지고 죽는 길 밖에 없었다.

개로왕을 사로잡은 고구려 장수들은 원래 백제인으로 고구려에 귀순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개로왕의 얼굴에 침을 뱉는 모욕을 주고 아차성으로 끌고 가 처참한 최후를 맞게 했다. 포악하지도 않고 의욕이 넘쳤던 개로왕의 비극적 몰락은 국제간 외교 실패와 국고 탕진이 주범이었다. 북한이 6차 핵실험 강행으로 5000만 한국민이 핵 인질이 될 위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선거공신 일색으로 외교안보팀을 구성, 최약체로 평가돼 개로왕의 전철을 밟을까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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