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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싸움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등록일 2017년09월12일 20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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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우리가 사회생활 중에 만나는 싸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氣) 싸움, 몸싸움, 닭싸움, 눈싸움, 말싸움 같은 것들도 있고 사랑싸움(오글거리게 하는), 씨앗싸움(부처님도 등을 돌린다는), 부부싸움(칼로 물 베는) 같은 것들도 있습니다. 이 말들은 “요즘 북한과 미국이 핵실험과 ICBM을 가운데 두고 서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언제 몸싸움으로 번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두 나라 병사들이 서로 닭싸움 하듯 쳐다보고 있다. 아직은 인도와 중국의 국경 갈등은 눈싸움과 말싸움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등으로 사용됩니다. 싸움을 나타내는 표현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인류 역사가 온갖 갈등으로 점철되어 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건과 사물이 없으면 말은 생기지 않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유사 이래로 가장 많이 인기를 끌었던 책(사상과 학문)들은 주로 ‘싸움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들이었습니다.

모든 종교는 자기를 죽이는 싸움의 기술을 주로 가르칩니다. 그래야 구원과 해탈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제때 죽이지 못하면 평생 고통에 시달립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친교 활동에서도 늘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시 편의와 이득을 얻어가는 것 같지만, 종내에는 모든 사람의 눈 밖에 나서 사회적인 죽음을 맞게 됩니다. 진작 죽었으면 될 것을 고생만 실컷 하고 죽습니다. 그러니 종교의 가르침은 죽기 싫어하는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자기와의 싸움’을 늘 부추깁니다. 그 싸움에 지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지옥에 떨어진다는 비유로 가르칩니다.

공자님 같은 분들도 직접적으로는 “죽어라”는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가르침의 요체는 그것과 대동소이합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공자님의 일관된 생각이었습니다. 본인도 실천하고 제자들에게도 실천하기를 권장했습니다. 참 쉬운 말인데 그대로 실행하려면 자기와의 싸움을 치열하게 해야 합니다. 저도 젊을 때 그게 잘 되지 않아서 여러 번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했다고 뒷사람들에게 “너도 해라”라고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비싼 수업료를 주고 배웠습니다. 요즘은 거의 그런 일이 없습니다. 누가 와서 수업료 달라는 이가 없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쩌면 몇 번 당하면서 이미 사회적 죽음을 치른 것인지도 모르겠고요.

물리적 싸움에서는 단연 기회와 거리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권투나 격투기 경기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무패의 권투 챔피언과 신화적인 격투기 챔피언의 싸움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체력을 다 쓴 격투기 챔피언이 후반부에 가서 힘을 못 쓰고 속수무책으로 지는 게 좀 아쉬웠습니다. 만약 평소처럼 자기 거리를 잘 잡아서 기회를 포착했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그러나 상대가 근접 싸움에 가장 강한 권투, 그것도 무패의 권투 챔피언이었던 관계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동양 무예에서 강조하는 일안이족삼담사력(一眼二足三膽四力, 첫째 눈, 둘째 발, 셋째 담력, 넷째 힘)이라는 말도 결국은 기회(눈)와 거리(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기회와 거립니다. 근자에 “소귀에 경 읽기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몇몇 고위 인사 임명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날로 커지는데 정작 인사 책임자는 귀를 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지도자들이 잘하는 싸움이 바로 ‘귀 싸움’입니다. 들을 말을 제때에 듣도록 부단히 노력합니다. 모든 싸움(정치)이 그렇듯 기회(정책, 인사 타임)와 거리(국민과의 긴밀한 소통)를 놓치면 속수무책이 될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귀 싸움에 태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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