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그러니까 과일 같은 것 사과 멜론 수박 배 감…… 다 아니고 예민한 복숭아 손을 잡고 있으면 손목이, 가슴을 대고 있으면 달아오른 심장이, 하나가 되었을 땐 뇌수마저 송두리째 서서히 물크러지며 상해 가는 것 사랑한다 속삭이며 서로의 살점 뭉텅뭉텅 베어 먹는 것 골즙까지 남김없이 빨아 먹는 것 앙상한 늑골만 남을 때까지…… 그래, 마지막까지 함께 썩어 가는 것…… 썩어갈수록 향기가 진해지는 것…… 그러나 복숭아를 먹을 때 사랑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감상) 우리는 나란히 썩어가기로 했다. 거울을 보지 않고도 입이 사라졌음을 소리가 사라졌음을 냄새가 사라졌음을 알았다. 잡을 손이 없어지자 약속을 후회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라진 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썩어가기로 했다 눈이 사라지고 나서도 서로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심장이 사라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서로 두근거렸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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