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전 일이다. 아마도 그분은 나를 잊어버렸을 것이다. 신문윤리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짧은 여정이 있어서 동행하는 버스 옆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분의 고향이 영주 무섬이라는 말을 들었다. 무섬마을은 오래전에 한 번 가보긴 했지만 마음을 풀어 놓고 간 여행이어서 그저 참 아름다운 지형이라는 생각과 이런 곳에 반촌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그분을 만나 들은 얘기는 영주댐 건설로 무섬마을을 350도 휘감아 흐르는 내성천의 요염이 극심하고, 강을 따라 이어지던 고운 모래사장이 훼손될 위기라는 것이었다. 또 그분은 지역의 신문사가 주도적으로 이런 문제를 다뤄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지켜질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란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역 신문의 취재력이란 것이 한계가 있어서 얘기를 들으면서 연신 고개는 끄덕였지만 내심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아마도 지금쯤 그분은 낙향해서 무섬마을 지킴이로 활동하고 계실 것이다.

무섬마을은 자연경관이 독특할 뿐 아니라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 10월 무섬마을 해우당 출신 김화진 선생의 주도로 마을 청년들이 세운 공회당이자, 주민 교육기관인 ‘아도서숙’이 독립운동의 핵심 주체였다. 1933년 7월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숙될 때까지 주민들에게 문맹 퇴치를 위한 한글 교육과 농업기술 교육을 하면서 독립운동에 나선 것이다. 작은 마을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에 서훈된 사람이 3명이고, 건국포장을 받은 이가 둘이나 된다. 

무섬마을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 집성촌이다. 17세기 중반 반남박씨 입향조 박수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뒤,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김씨 대라는 분이 영조 때 다시 무섬에 들어와 후손들이 지금까지 세거하고 있다. 버스 옆자리 앉았던 분의 성함이 김지영 씨로 그는 경향신문 편집인을 지냈다. 아마도 선성김씨일 것이다. 

무섬마을에서 마을의 상징인 외나무다리를 소재로 한 ‘2017 무섬 외나무다리축제’가 23일 문수면 수도리에서 열린다고 한다. 무섬마을을 다시 찾아가면 아름다운 자연과 축제도 볼만하겠지만 전통과 애국심이 주머니 속 옛이야기처럼 물돌이동에 전하는 것을 마음을 다잡아 보고 와야겠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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