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육신이 된 것이 나다

수동을 능동으로 번역한 것이 바로 나다

반가사유상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당신이 오지 않으면 내가 왕이다, 생각한다

그래도 당신이 오지 않으면 나는 보살이다, 생각한다

아버지여, 성냥으로 만든 집이

무너지고 다시 서고 홀랑 타버릴 동안

조바심이 선지국처럼 끓는다

당신의 자리에 선지처럼 각 잡고 앉아서

검붉은 마음과 종말론을

양다리와 좁은 비상구를 비교하다가

이미 온 사람에게 어서 오라고 채근하는 것이 나다

편한 자리에 앉으라고, 하지만

거기는 예약되어 있다고 통보하는 것이 바로 나다

(후략)





감상)김밥 한 줄 사서 형산강변으로 간다. 기다릴 사람 없고 기다려 줄 사람 없는 그곳에서 나는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것처럼 두근거린다. 그곳에서 나는 노을도 아니고 억새도 아니고 저녁강도 아닌 기다림의 하수인이 된다. 기다림은 나에게 아무 명령도 하지 않았지만 눈치껏 내가 먼저 가서 아는 체를 한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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