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히로히토 일본 왕이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당시 이 ‘유감’ 표명을 두고 사과냐, 아니냐 논란이 있었다. 침략이면 침략이고, 식민통치면 식민통치지 ‘불행했던 과거’는 무엇이고, ‘유감’은 또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우리의 사전적 의미로는 ‘섭섭한 감정이 남는다’는 뜻의 ‘유감’이 ‘사과’의 외교적 표현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는 일본이 ‘유감’과 ‘사과’의 차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기에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는 여론이었다.

요즘도 정치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려면 기존의 국어사전 외에 별도의 용례집 같은 것이 하나 더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들은 실언과 막말을 하고 사과할 때 히로히토처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면 사과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유감’은 한자 뜻 그대로 남길 유(遺), 섭섭할 감(憾),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어느 구석에도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는 뜻이 없다. 오히려 불만스런 마음이 남아 있다는 감정의 표현이다. 그런데도 ‘유감’이라고 하면 사죄를 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국어사전에 ‘유감’이란 단어의 뜻을 ‘외교관이나 정치인들이 쓰는 사과의 표현’이라고 추가해야 할 판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흔히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는 상대방을 향에 그 감정을 드러낼 때 도끼눈을 하고 “와, 유감 있나?”라 한다. 서로의 감정이 격해져서 왕왕 주먹다짐으로 번지는 시비를 걸 때 쓰는 말이다. 이것이 오히려 ‘유감’을 뜻에 맞게 제대로 사용하는 예다.

지난 18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과 관련해 국민의당에 했던 막말에 대해 “‘적폐연대’, ‘땡깡’ 등의 발언으로 맘 상하신 분 계시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비난의 정도에 비해 미흡하지만 사과의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 절차 협의에 응할 것이라 했다. 추 대표의 ‘유감’ 사과의 결과가 주목된다.

이동욱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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