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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섭의 신삼국유사] 51. 진흥왕과 진지왕, 도화녀 이야기

진흥왕은 신라의 명군 진지왕은 폐군

윤용섭 삼국유사사업본부장 등록일 2017년09월21일 21시05분  
진흥왕 북한산순수비
이사부장군이 우산도를 평정한 이야기 다음, 제24대 진흥왕과 25대 진지왕 시대의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진흥왕은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가 15세였으므로 태후가 섭정을 하였다. 태후는 법흥왕의 딸로서 입종 갈문왕의 비였다. 진흥왕은 임종할 때에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운명했다.

승성(承聖) 3년(553년) 9월에 백제의 조사가 진성을 침범하여 남녀 3만9천명과 말 3천필을 빼앗아 갔다. 이보다 먼저 백제가 신라와 군사를 합하여 고구려를 치자고 하니 진흥왕이 말하기를 “나라가 흥하고 망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만약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내 어찌 고구려의 멸망을 바라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말을 고구려에 전하니 고구려는 감동하여 신라와 평화롭게 지냈다. 이 때문에 백제가 신라를 원망하여 침범을 한 것이다. 이상이 삼국유사의 기록인데, 아주 간단하다. 진흥왕은 신라의 명군으로서 후일 삼국통일을 할 수 있느 ㄴ바탕을 닦은 분이다. 그래서 보금 더 보충하기로 한다.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며, 551년(진흥왕 12) 법흥왕대에 제정된 연호 건원(建元)을 개국(開國)으로 고쳤다. 아마 친정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진흥왕의 업적은 첫째, 576년 만족고유의 종래의 풍월도(風月道)를 계승하는 화랑도를 제정하여 신라의 정신세계를 드높였다. 둘째, 대외적으로 영토를 크게 넓혔다. 가야를 병합하고 죽령 이북과 고현(高峴:지금의 철령) 이남의 10군(郡)을 점령하였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백제의 성왕(聖王)이 대가야와 연합하여 쳐들어오자 관산성(管山城:지금의 옥천)싸움에서 크게 물리쳤다. 금관가야의 김무력(金武力)을 신라의 귀족으로 받아들였다. 김무력의 아들이 김서현이고 김서현의 아들이 김유신이다. 이 싸움에서의 승리로 신라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확보하여 중국과의 직접 교통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활발한 문화사업이다.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國史)를 편찬하게 하고 불교를 장려하며 경전을 간행하였다. 다음은 진지왕 시대의 도화녀와 비형랑에 얽힌 이야기다. 진지왕은 미륵선화를 얻어 7년간 풍교를 행하여 화랑도가 더욱 성숙한 정신문화로 자리잡게 한 공로가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황음하여 좋지 못한 행적이 나은 것이다.

제 25대 사륜왕의 시호는 진지대왕으로 성은 김씨이며 왕비는 기오공의 딸인 지도부인이다. 대건 8년(576년)에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 지 4년 만에 주색에 빠져 음란하고 정사가 어지러우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위시켰다. 그 전에 사량부 어느 민가의 여인이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사람들이 도화랑이라고 불렀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궁중에 불러와서 욕심을 채우고자 하니 여인이 거절하자, 왕이 “네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 하니, “되겠습니다.” 하니, 놓아 보내주었다. 이 해에 진지왕이 폐위되고 죽었는데 2년 후에 도화랑의 남편도 죽었다. 협순이 지난 어느 날 밤, 홀연히 왕이 평시와 같이 여인의 방에 들어와 말하길, “네가 옛날에 허락한 말이 있지 않느냐. 남편이 없으니 되겠느냐?” 여인이 허락치를 않고 부모에게 이 사실을 고하니 부모가 말하기를, “임금의 말씀인데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하고 딸을 왕의 방에 들어가게 하였다. 왕이 모무를 동안 늘 오색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다가, 7일후 홀연히 사라졌다. 여인이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비형이라고 하였다. 진평대왕은 그 아이를 궁중으로 데려다 길렀다. 나이가 15세가 되자 왕은 집사 벼슬을 주었다. 비형은 밤마다 나가서 놀곤 하였는데, 월성을 날아 넘어서 서쪽 황천 언덕 위에 가서 귀신들을 데리고 놀았다. 진평왕이 비형에게 귀신의 무리를 이끌고 신원사의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아라 하니, 비형은 그 무리를 시켜 돌을 다듬어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다. 그래서 그 다리를 귀신다리라고 한다. 왕이 또 묻기를, “귀신들 중에 인간으로 출현하여 조정을 도울 자가 없느냐?” 하니, 길달을 추천하였다. 어느 날 길달이 여우로 변하여 도망하니 비형이 귀신의 무리를 시켜 그를 잡아죽였다. 귀신의 무리들은 비형의 이름만 듣고도 두려워하며 달아났다. 당시의 사람들이 “여기는 비형랑의 집이다. 날고뛰는 잡귀의 무리들은 이곳에 머물지 말라.” 는 글을 지어, 향속에 붙여 잡귀를 물리쳤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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