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다자주의 대화로 평화 실현 절박"…북핵 새 접근 주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상이 취임 첫해 유엔총회에 참석해 연설을 하는 것은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이후 처음이다. 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21일(이하 미국 동부시간) 유엔총회에서 행한 기조연설을 관통하는 3대 키워드는 ‘평화’ ‘촛불’ ‘사람’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상징하는 ‘촛불혁명’은 세계 민주주의의 새 희망이 되고 있고, 이를 통해 창출된 문재인 정부는 ‘사람중심’의 국정철학을 실천하고 있으며, 그 기조 위에서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안보문제에 대해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연설문의 핵심요지다.

이 가운데 문 대통령이 가장 부각시킨 것은 ‘평화’로, 전체 연설문에서 32차례나 언급됐다. ‘촛불’과 ‘사람도’ 10차례씩 거론됐다.

취임후 첫 유엔무대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보다 강조하려는 대목은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 세가지 핵심어가 바로 유엔 정신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점이다.

유엔과의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앞으로 국제사회의 당면현안을 풀어나가는데 있어 한국도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문 대통령이 한걸음 더나아가 주목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유엔의 역할과 기여가 커지고 있는 점이다. 특히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유엔이 ‘역할’에 나서줄 것을 공개적으로 제기해 주목된다.

◇ 유엔 차원 ‘다자주의 개입’ 주문…북핵논의 새 접근 = 국제외교가가 가장 눈여겨보는 대목은 ‘유엔 역할론’이다.

여전히 불안정한 정전체제로 인해 동북아의 마지막 냉전질서로 남은 한반도에 평화를 실현하려면 유엔 차원에서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이 ‘평화적 해결’ 원칙을 유지하는 가운데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동북아 안보질서를 이끄는 4강(强) 중심의 기존 북핵논의와는 다른 차원의 ‘다자주의적 개입’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다자주의 대화를 통해 세계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유엔 정신이 가장 절박하게 요청되는 곳이 바로 한반도”라고 강조했다.

미·중간의 힘겨루기와 북·미간의 기싸움 양상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동북아 역학질서 속에서는 북핵문제를 포괄적·근원적으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제 그 어떤 이슈도 한 두 나라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된 오늘날, 우리는 유엔 정신을 전면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방주의나 ‘힘의 논리’가 아니라 분쟁방지와 평화실현을 기본목표로 삼고 있는 유엔 차원에서 북핵문제를 다루는 다자주의적 해법을 찾아보자는 취지인 셈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어떤 형태의 다자주의 틀을 염두에 두고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현재 북핵 논의의 틀은 북·미, 남·북 등 양자 틀 외에도 6자회담이라는 다자 틀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신(新) 냉전적 구도 속에서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게 외교가의 지적이다. 특히 한·미·일 중심의 대북 압박공조에 중국과 러시아가 소극적으로 응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기존 북핵 논의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유엔의 ‘중재역’을 통해 동북아 역내에서 새로운 다자주의 대화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게 문 대통령의 구상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동북아 안보의 기본축과 다자주의가 지혜롭게 결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 핵문제의 경우 주요 6개국(P5+1) 주도의 핵협상으로 결실을 이끌어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유엔 역할론을 강조한데에는 다자주의적 개입이 전제돼야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 위기를 완화하고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갈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나치게 긴장을 격화시키거나 우발적 군사적 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했다. 이는 현재 미·중간 힘겨루기에 북한의 핵야욕이 맞물리면서 초래될 수 있는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을 경계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 北에 ‘평화’와 ‘압박’ 동시에…“CVID 결단 촉구” =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을 향해 ‘평화’와 ‘압박’의 메시지를 동시에 던졌다.

문 대통령은 현시점에서 국제사회의 공조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에 놓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근 안보리가 제재결의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처럼 국제사회가 일치단결된 대응에 나선다면 결국 북한이 태도를 바꿀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깔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으로 포기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스스로 핵을 포기할 때까지 강도높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임을 강조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기존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와 동시에 리용호 외무상을 면전에 두고 행한 연설에서 북한을 향해 ‘평화의 길’로 나서라고 압박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북한 정권 붕괴, 흡수 통일, 인위적 통일’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NO’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이제라도 역사의 바른 편에 서는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을 도울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스스로 평화의 길을 선택하기 바란다”며 “평화는 스스로 선택할 때 온전하고 지속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달리 북한이 민감해하는 인권문제는 이번 연설에서 거론하지 않았다.

이 같은 스탠스는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완전파괴’ 발언과 같은 초강경 대응도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 ‘촛불혁명’은 세계 민주주의 희망 = 문 대통령이 이번 연설에서 강조한 또하나의 방점은 ‘촛불’에 놓여있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시킨 것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시민들이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성취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단순히 개별국가의 민주주의 성취라는 차원을 넘어 전세계 민주주의사(史)의 이정표로서, 유엔이 표명한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과제에 있어 의미있는 ‘모델 케이스’가 될 수 있을 것임을 역설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시작은 늦었지만 세계 민주주의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새 정부가 촛불혁명이 만든 정부”라며 국민들로부터 민주적 정통성을 부여받은 정권임을 강조했다.

◇ ‘사람중심’ 국정철학 부각…“유엔정신과 일맥상통” = 이번 연설의 또다른 핵심어는 ‘사람 중심’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상징하는 이 키워드는 이번 유엔총회의 주제인 ‘사람을 근본으로’와 일치하고 있다는게 문 대통령의 강조점이다. 특히 문 대통령의 정치 슬로건인 ‘사람이 먼저다’는 ‘인간우선’이라는 유엔헌장 정신과도 정확히 부합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의 모든 정책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 같은 공통의 가치를 토대로 “유엔 모든 분야에서 더욱 기여를 높여나갈것 ”이라고 문 대통령은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사람중심 경제’ 철학에 따라 저성장과 경제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경제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전환해나가고 있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기조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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