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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아는 만큼 느낀다고 말한다.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나 타당한 명제라고 여긴다. 나의 경우 해외여행을 앞두고는 자격 요건이라도 되는 양 실천에 옮긴다. 빈약한 독서량은 상당 부분 그 덕분에 채워졌다.

이탈리아 여행 때 열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그리고 배낭여행하면서 탐독한 이십여 권의 중국사는 어렴풋이나마 세계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특히 미국 동부 방문 시는 현지 초등생 역사 교과서를 포함한 10권의 책을 섭렵했다. 그 가운데 세 권이 재즈에 관한 도서다.

미국 역사서를 접하면 총기 소유와 흑백 갈등과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사가 실감난다.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이들 흑인 노예는 바로 재즈 탄생의 원류이기도 하다. 에릭 홉스봄이 지은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과 이종학의 저서 ‘길모퉁이 재즈카페’ 그리고 권오경이 펴낸 ‘재즈 입문’을 읽었다. 재즈의 선율을 오롯이 감상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어도 이론적인 기초 지식은 가졌다. 물론 허접하고 피상적인 재즈 일반에 불과한 상식에 다름 아니다.

재즈를 검색하면 몇 가지 키워드가 등장한다. 뉴올리언스, 흑인 음악, 스윙, 리듬, 즉흥 연주 같은 용어다. 재즈는 19세기 말 무렵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항구 도시이자 교통의 요지인 탓으로 유흥업소가 번창했고, 춤과 음악에 대한 수요가 넘치면서 뮤지션이 몰려왔다. 흑인·백인·크레올·남미인은 어울려 부대끼면서 각자의 고유한 음악이 뒤섞여 재즈라는 새로운 장르가 잉태됐다.

재즈의 기본 요소는 스윙과 즉흥 연주이다. 단적으로 스윙이라는 리듬 위에 즉흥 연주를 펼치는 음악이 재즈다. 라틴 재즈는 쿠바나 브라질 같은 라틴 음악의 리듬에 즉흥 연주를 하는 갈래이고, 재즈 록은 록의 리듬에 즉흥 연주를 하는 분야이다.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재즈는 시카고를 거쳐 뉴욕으로 옮겨갔다. 상업적인 색채가 강한 스윙은 뉴욕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스윙은 리듬이 아니라 장르를 뜻한다. 이에 반발한 젊은 뮤지션들은 진보적인 비밥을 만들었고 이는 모던 재즈의 시대를 열었다. 비밥은 쿨 재즈와 하드 밥으로 진화했고, 비밥에 블루스·R&B·가스펠 같은 흑인 음악 요소가 섞여 소울 재즈가 생겼다.

동해 바다 해변 도시 포항에서 칠포 재즈 페스티벌이 열렸다. 파도가 철썩이는 가을밤의 향연에 초대된 재즈의 가락은 감미로웠다.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한 축제였다. 드넓은 야외 객석이 꽉 찬 청중들을 보면서 음악적 목마름과 문화적 구매욕을 새삼 절감한다.

재즈와 푸드의 결합이란 콘셉트도 괜찮은 발상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시공간을 하나로 엮었으니 자유스럽다. 빨간색 푸드 트럭 앞엔 어김없이 긴 줄을 섰다. 최고의 인기 음식은 역시 생맥주다.

현대의 영웅은 엔터테이너가 아닌가 싶다. 크러쉬의 공연을 보면서 떠오른 단상이다. 왜 앉았느냐는 일갈(?)에 다들 일어서서 몸을 흔들고, 일제히 스마트폰 불빛을 발하는 광경은 집단 소통의 일체감을 보여준다.

칠포 재즈 페스티벌의 백미는 단연 에릭 베넷의 무대이다. 하얀 중절모에 갈색 머플러를 착용한 그는 앙코르를 세 번이나 하면서 한국의 팬들을 열광시켰다. 베이스·건반·드럼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캄보 밴드. 열정적인 즉흥 연주가 없어서 아쉬웠다. 예술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는 이즈음 수준 높은 행사가 잦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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