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위축···설 전에 바꿔야" vs "국민, 개정 원하는지 의문"

그동안 사회적 논란을 빚어온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28일로 시행 1주년을 맞는다.

관공서에서는 촌지나 케이크 등 선물이 사라지고, 식당에서는 각자 내기로 관행이 굳어지는 등 청탁금지법의 효과가 뚜렸해졌다. 그러나 음식물·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을 정한 이른바 ‘ 3·5·10’ 규정을 두고 개정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해서는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금품을 수수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을 대통령령이 정한 범위까지 허용한다.

현행 시행령이 허용하는 기준은 음식물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으로, 이를 ‘3·5·10만원 규정’으로 부른다.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이 없다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까지는 금품을 받아도 된다.

무엇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금품수수를 제한하는 법이므로, 친지·이웃·친구·연인 등 사이에서 주고받는 선물은 청탁금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7월 기자간담회에서 “이 법이 추석에 친지와 이웃 간에 선물을 주고받는 데 지장을 초래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특정 직종 부진 등의 관점에서 가액을 조정한다면 새 정부 반부패정책 기조에도 맞지 않고 국가의 청렴 이미지 제고에 손상을 준다”고 밝혔다.

청탁금지법의 틀을 닦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역시 지난달 발간한 저서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에서 “한우나 굴비도 100만 원이 넘지 않으면 직무와 관련 없이 받는 것은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청탁금지법은 금품을 받는 사람이 ‘공직자’인 경우에 한정해서 적용되지만, 민간기업이나 일반 시민 가릴 것 없이 사회 전반적으로 ‘3·5·10’ 규정을 따르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외식업체·화훼농가·농어민 등이 소비 위축에 따른 매출감소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추석 전까지 개정해달라”고 요구하다가 안 되자 “내년 설 전에는 꼭 바꿔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어온 개정안은 3·5·10만원 규정을 ‘10·10·5’로 조정하자는 개정안(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 발의)과 농수축산물과 전통주를 청탁금지법 대상 품목에서 제외하자는 개정안(국민의당 박준영 의원 발의)이 있다.

강효상 의원은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후 2016년 국산 농축산물 선물 판매액은 전년대비 26% 감소했고, 과일과 수산물도 각각 31%, 20% 감소했다. 외식산업연구원이 작년 12월 전국 709개 외식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4.1%가 전년 대비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며 “내수경제 위축이 묵과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개정안 제안이유를 밝혔다.

그는 음식물과 선물 가액은 각각 10만원으로 현실화하고, 경조사비는 과거 공무원행동강령이 정한 대로 5만원으로 돌려놓자는 입장이다.

정부에서는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3·5·10’ 규정 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 차원의 종합검토를 시사했다.

이낙연 총리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해 청탁금지법에 대한 검토 의지를 밝혔다.

부정청탁과 과도한 접대를 없애 사회를 맑게 만드는 한편, 농어민과 음식업자 등 서민들의 살림을 위축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양자를 다 취할 수 있는 지혜를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이 총리는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부정한 청탁과 과도한 접대가 줄어들고 청렴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농축수산업계와 음식업계 등 서민경제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청탁금지법 시행이 공직 투명화 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완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추석을 앞두고 청탁금지법의 범위와 역할에 대해서도 재차 짚었다. 총리는 “국민들께서 추석 선물을 준비하면서, 청탁금지법을 잘 몰라 우리 농축수산물의 구매를 꺼리는 일이 많다고 들었다”며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직무관련 금품수수를 제한하는 법으로, 공직자가 아닌 사람은 청탁금지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 법을 개정하려면 무엇보다 권익위가 대다수 국민이 개정을 원하는 여론이 높아야 한다.

시행한 지 1년밖에 안 된 청탁금지법을 개정하려면 여론이 수긍할만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개정 봇물이 터지면 개정에대한 요구가 우후죽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권익위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오는 11월 말께 대국민보고를 계획하고 있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 시행의 경제영향분석’ 연구용역 을 12월11일에서 11월 말로 종료 시점을 앞당겨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김정모 기자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으로 대통령실, 국회, 정당, 경제계, 중앙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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