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훌륭한 작가, 작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제대로 번역해서 소개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요즘은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번역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어서 조만간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나오지 않겠나 싶습니다. 최근에 소설가 한강이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출판사 아델피는 이 책을 ‘아티 우마니’(‘인간적인 행위’라는 뜻)라는 제목으로 최근 현지에서 펴냈습니다만, 이례적으로 출판 전 원고 상태의 이 책을 심사위원회에서 읽고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합니다. 한국 문학의 쾌거라 하겠습니다.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은 5·18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입니다. 사실에 충실한 취재, 과장기 없는 담담한 문체, 세밀한 감수성으로 포착하는 역사와 개인의 문제 등으로 이미 많은 국내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작품입니다. 작년에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으로 맨부커 상을 수상한 작가 자신도 이 작품이 상을 받지 못해 아쉽다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한강 작가의 아버지는 소설가 한승원 선생입니다. 이제는 한강의 아버지로 소개되지만 원래는 한승원이 훨씬 더 유명한 작가입니다. 전라남도 장흥에 가면 두 사람의 유명한 소설가(의 고향)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청준과 한승원이 그들입니다. 동갑내기인 두 분 중 이청준 선생은 회진 근처의 진목마을이 고향이고 한승원 선생은 회진리 바로 맞은편 덕도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두 분의 비중을 고려할 때 가히 문향(文鄕)이라 할 만합니다. 두 분은 깊고 푸른 남해, 아늑하고 포근한 섬과 갯벌, 무성한 천관산의 억새풀을 보면서 그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키웠습니다. 한 분은 돌아가셨고 한 분은 지금 본인이 받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수상 소식을 듣고 계십니다. 내가 물려준 가업이 자식 대에서 대성(大成)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승원 선생은 일찍이 “자식이 나보다 낫다”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수년 전, 대구에서 큰 문학행사가 있어서 발표자로 오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회를 보던 저는 그 당시 장흥에 토굴을 짓고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한 선생님을 ‘한국의 헤밍웨이’로 소개했습니다. 고단한 작가의 길을 몸소 앞장서서 보이는 대선배 작가에 대한 나름의 예우였습니다. 한 선생님은 그 소개를 기분 좋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례를 지금 독자들에게 하고 계십니다. 본인 대신 따님이 나서서요.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 시대의 소설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요즘은 르포나 자서전과 같은 기록문학이 허구 위주의 소설을 대체해 나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그렇습니다. 재작년,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그렇습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르포였고,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은 자서전이었습니다. 르포 작가와 팝송 가수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간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제는 ‘사실에 충실한 취재, 과장기 없는 담담한 문체, 세밀한 감수성으로 포착하는 역사와 개인의 문제’가 없이는 진정한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이탈리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외국 작가상을 받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교묘하게 꾸며서 적기를 애써 공부하고 기발하고 재미있는 사건과 비유를 찾아 헤매는 일은 이제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자서전 하나 멋지게 쓰시면 누구나 작가가 됩니다. 자, 자서전들 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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