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은 인간의 존엄과 건강 문제와 직결된다. 이 때문에 화장실 문화는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제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197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수세식 화장실의 진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양식 좌변기가 일반화됐을 뿐 아니라 많은 가정과 직장에 비데 공급이 늘고 있다.

수세식 화장실은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수세식 화장실이 없었다면 아파트나 고층건물도 상상 속의 공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세식 화장실이 당연히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처음 시도됐을 때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했다. 19세기 초 수세식 화장실에서 흘러내려 간 오물이 강을 오염시켰다. 밀물 때는 오염물이 가정으로 역류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좌변기의 형태는 수세기에 걸쳐 고안됐다. 최초로 제작된 것은 1596년 존 해링턴 경의 수세식이다. 상자형의 변기에 급수관을 붙여 물을 흘려 보내는 기초적인 방식이었다. 화장실을 ‘WC’라 하는데 이는 헤링턴 경이 처음 발명한 변기를 나타내는 ‘워트 클로젯(Water Closet)’을 줄인 말이다. 이를 더 발전시킨 사람은 런던의 시계공 알렉산더 커밍이다. 1775년 헤링턴의 아이디어에 물이 흡입되는 관과 아랫부분에 여닫이 뚜껑을 금속으로 달아 악취 문제를 해결했다. 1892년에야 스티븐 헬리어가 오늘날의 수세식 좌변기처럼 구부러진 관에 흘러내리고 난 물이 고여 있게 하는 옵티머스(Optimus)라는 장치를 개발했다. 서양식 수세식 변기의 완성에 30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것이다.

목욕문화가 발전했던 5세기 로마 시대 유적에서 공동 수세식 화장실 유적이 발견돼 화제였다. 경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하고 있는 동궁과 월지에서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태인 수세식 화장실의 흔적을 발견, 그 성과를 26일 공개했다. 로마와 달리 별도의 화장실 건물 내에 화강암으로 깎은 변기 시설, 오물 배수시설까지 함께 갖춘 유구가 발굴돼 8세기 통일신라 시대 왕궁의 문화가 얼마나 세련됐는지를 증명해 보여줬다. 대단한 발굴이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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