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선비와 담백한 상어고기···차례가 언제 끝나나 ‘군침만 꿀꺽’

최대 열흘에 이르는 추석 황금연휴가 시작됐다.

추석은 신라시대 가배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보다 앞선 역사에서도 부여 영고와 같이 곡식을 거둬들인 것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 형태의 제도가 문화적 전통으로 이어져 왔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은 새해를 맞는 설날과 한가위 추석이지만 새 곡식들이 익어가는 시기에 지내는 추석은 그야말로 한국 음식대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수음식은 유교형식에 따라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지방 특성에 따라 달리 오르는 음식들도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전라도에는 홍어가 있으며, 경북에서는 그리고 영천을 중심으로 경북 남부권의 돔배기, 안동권역의 문어숙회, 영주지역의 배추전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눈이 쏠리는 것이 안동 문어숙회와 영천 돔배기다.

안동과 영천은 경북도내에서 가장 내륙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해산물인 문어와 돔배기가 대표음식중 하나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안동 문어는 단순히 제수음식일 뿐만 아니라 관혼상제는 물론 생일잔치를 비롯한 각종 연회와 손님 접대에 결코 빠져서는 안되는 대표음식이 됐다.

영천 돔배기 역시 영천을 중심으로한 영남권 제사상에 절대로 빠트리면 안되는 필수제수음식이며, 최근에는 다이어트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추석 연휴를 맞아 경북을 대표하는 특별한 제수음식으로 꼽히는 안동 문어와 영천 돔배기의 유래를 살펴본다.
□안동 문어

안동지방에서는 예로부터 관혼상제는 물론 집안의 대소사나 집들이 등 각종 행사, 손님 접대시 반드시 문어를 썼으며, 지금도 상가(喪家)나 각종 행사시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특히 아무리 많은 접빈음식을 차려놓더라도 문어가 빠지면 좋은 평을 듣지 못하며, 다른 접빈음식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문어만 나오면 ‘그 집 잔치 잘하더라’라는 평을 듣게 된다.

안동지역이 내륙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이처럼 문어를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최고 음식으로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어가 안동지역으로 전래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한다.

안동시에 따르면 문어가 안동 의례문화에서 중요한 음식으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초반이후 영해지역 해산물과 안동 등 내륙지방 곡물과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임동 책거리장을 통해 들어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영해지방 재령 이씨를 비롯한 반족과 안동지방 반족간 통혼이 이뤄지면서 신행음식으로 반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어는 통상 살아있는 문어를 가져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먹기 때문에 숙회로 불리지만 안동지역에서는 문어산적이라고도 한다.

즉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중 하나로 꼽히는 ‘안동간고등어’의 경우 해안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교통수단이 부족하던 시절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염장을 한 것이만 안동 문어는 살아있는 문어를 가져와 데친 다는 데서 문화적 특성이 다르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래과정을 거친 문어가 안동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으로 자리한 데는 문어의 생태적 특성이 한국 정신문화의 고장으로 불리는 안동 선비들의 의식과 딱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문어는 한자어로 글월 문(文)과 고기 어(漁)로 쓰기 때문에 학문을 의미해 ‘양반고기’로 일컬어 지면서 문어야 말로 안동사람들이 학문을 즐기고 숭상하는 정신세계를 가장 잘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리가 8개인 문어는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안동 선비들의 의식과 연결돼 부계·모계·처가·진외(아버지의 외가)·외외가(어머니의 외가)를 통칭하는 팔족(八族)의미까지 부여됐다.

또한 문어의 생김새가 둥근 머리는 깨달음을 의미하고, 바다 깊은 곳에서 최대한 몸을 낮추고 사는 생태는 수졸한 삶을 살아가는 선비가 닮았다고 봤다.

수졸이란 ‘집을 지어 한가로이 자연을 벗하다가 원(願)을 마친다면 선비의 본분에 다행’라는 글에서 따온 것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낮음을 지키며 산다’는 겸양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에 문어가 위기때 내뿜는 먹물은 선비들의 필수품인 먹물의 의미하기 때문에 안동선비들이 자연스레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특히 해저에 10만개 이상의 알을 낳은 뒤 6개월여 알을 지키다 죽는 문어의 마지막 모습이 선비의 절개와 닮았다는 것도 안동선비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즉 안동 대표음식인 안동간고등어는 운송수단이 어렵던 시절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염장처리하면서 자리를 잡았다면 문어는 안동선비들의 고귀한 정신과 문화적 특수성이 어우러지면서 자리 잡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영천 돔배기

안동을 대표하는 제수음식이 문어라면, 영천을 대표하는 제수음식은 돔배기다.

돔배기는 ‘간을 친 토막 낸 상어고기’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로 구이와 산적 그리고 조림에 이용하며, 영천·안동·의성 등 영남지역 대부분 지역에서 필수 제수음식으로 꼽히고 있다.

안동 간고등어와 마찬가지로 내륙지방인 영천이 바다생선인 상어고기로 만든 돔배기 주산지로 자리잡게 된 것 역시 교통수단과 보관방법이 마땅찮아 염장하기 시작한 것이 그 기원이다.

상어고기가 언제부터 제수음식으로 자리 잡았는지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1980년대 경산시 임당동 고분에서 상어 뼈가 발견되면서 최소 삼국시대 때부터 제사에 쓰여 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상어고기는 현대에 와서도 잡는 즉시 선상에서 머리·꼬리·내장 등을 제거한 뒤 급속냉동시켜 처리하기 때문에 상어 생물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교통수단이나 냉장시설이 전혀 없었던 먼 옛날 동해안에서 잡힌 상어고기를 내륙지방으로 보내기 위해 상어고기를 토막낸 뒤 부패방지를 위해 왕소금에 절이는 염장법이 발달하게 됐다.

즉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발한 염장법이 돔배기의 맛을 더욱 담백하고 쫄깃하게 해 줘 그 맛이 별미였으며, 귀한 손님이 오거나 조상을 모시는 제사상에 주로 쓰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의학에서는 상어를 ‘교어(鮫魚)’라고 부르며, 오장(五臟)을 보(補)하는 효능과 특히 간(肝)과 폐(肺)를 돕는 작용이 강해 피부 질환이나 눈병에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또 돔배기는 단백질이 많고 지방이 적어 다이어트 목적으로 즐겨 먹는 닭가슴살과도 비슷하면서도 몸에 필요한 다른 영양소들이 훨씬 뛰어나다.

돔배기는 특별히 만드는 방법이 있다기 보다는 숙성 정도가 맛을 결정하기 때문에 언제 사용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밝혀야만 한다.

즉 염장식품이기 때문에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염도를 달리해야 하는 데다 언제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소금의 양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교통이 불편하고, 냉장저장시설이 많지 않았던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돔배기는 산지에서 강하게 친 소금으로 인해 말도 못하게 짜 ‘돔배기 한편이면 밥 1그릇을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또 돔배기는 집에 가져와 대개 겨울에는 3~4일 정도, 여름에는 1~2일 정도 실온에서 숙성을 시킨 뒤 씻어서 하루 정도 말려 의례음식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지금은 냉동차량 등 운송수단과 냉장시설이 구비된 데다 건강을 위해 싱겁게 먹는 습관들이 고착화되면서 돔배기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즉 간을 하지 않은 채 가져온 상어고기를 손님이 사기로 하면 그때서야 소금을 뿌려주기 때문에 과거처럼 짜게 만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영천의 특산물로 확고히 자리잡은 돔배기는 육질이 담백하고 부드러우며, 특유의 감칠맛과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제사상에 올리는 방법은 크게 산적과 탕수다.

산적은 적당한 크기로 장만된 돔배기를 꼬지로 꽂은 뒤 기름에 구워 만드는 것이며, 이에 따라 통상 꼬지단위로 판매된다.

산적 이외에도 남은 돔배기나 돔배기 껍질을 잘게 썰어 당근·무·소고기·두부를 넣고 끓이면 ‘탕수’가 돼 산적과 함께 필수 의례음식으로 제사상에 올려진다.

한편 돔배기는 주로 귀상어와 참상어, 악상어 등으로 만들지만 머리 모양이 T자 모양인 귀상어로 만든 돔배기가 속칭 ‘양지(양제기)’라고 불리며, 최고상품으로 쳐준다.

이어 속칭 ‘모노’라고 불리는 청상아리 또는 참상어가 잘 팔리고, 악상어은 ‘준달이와 풀치’라는 이름을 팔리고 있다.

현재 영천시장(큰장)내 어물전내 20여 돔배기 상인들은 전통 상어고기 갈무리법과 간 맞추기 비법으로 독특한 상어고기의 감칠맛을 내 전국 소비량의 50%가량인 연간 500t가량이 거래된다.

이들은 대부분 50여년간 대를 이어 돔배기를 취급해 온 상인들로, 돔배기를 만지고 맛을 내는 비법을 대를 이어 전수해 옴으로써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됐다.

이종욱 기자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정치, 경제, 스포츠 데스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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