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정성으로 조상 섬기기 다하는 것이 제사의 근본"

도산서원 환안제 봉행
제례란 조상에 대하여 보은과 감사를 나타내는 예의범절이며 조상숭배의 한 의례이다. 조상숭배와 보은은 조선 오백년 동안 치국이념으로 형성되고 가신신앙으로 승화되어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안동지방에서는 지금도 각종 제례의 전통이 잘 지켜지고 있다. 안동 사람들은 조상을 섬기는 것이 높은 관직을 역임하는 것보다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오늘날까지도 직장에서 물러나게 되면 세상일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종가를 지키고 봉제사와 접빈객으로 예를 다한다.

차례는 설과 중구 등 명절에 올리는 제사라고 하여 안동지역에서는 절사(節祀)라고도 한다. 차례의 기원은 다례(茶禮)라고 하여 문자 그대로 다(茶)를 행할 때의 모든 예의범절을 뜻하는 말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례라 하면 옛날 궁중의 다례나 불교의 다례 등을 가리킨다.

차례는 모든 조상을 한꺼번에 모셔다가 지낼 뿐 아니라, 거의 집집마다 제사를 올려야 하므로, 종반들끼리 순서를 정해서 지낸다. 제일 작은집에서 먼저 차례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큰집 및 종가집에 가서 제사를 올리는데, 집안에 따라서는 그 반대로 지내기도 한다.
도산서원 환안제
제수는 기제사와 그리 다르지 않으나 설 차례에는 떡국을 올리고 중구 차례에는 햇과일과 햅쌀로 빚은 송편을 올린다. 제사 절차는 기제사와 그리 다르지 않다. 안동지역에서는 추석 때 햅쌀이 나지 않으므로 음력 9월 9일 중구 차례를 지내왔다. 최근에 추석이 공휴일로 바뀜에 따라 추석 차례를 많이 지내게 되었으나, 아직도 명문의 종가에서는 중구 차례 전통을 지키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김미영 박사는 “주자가례에 따르면 ‘신년과 보름에는 사당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차를 올린다’고 해서 이를 제례라고 하지 않고 차례(茶禮)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관행이 조선으로 넘어와서 일반 제례와 구분을 하지 않게 됐으며, 주자가례를 원칙으로 삼으면, 신년과 추석에는 제철과일을 마련해 간소한 제물을 차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안동을 중심으로 경북북부지역에서는 원래 추석에는 성묘만 하고 차례는 지내지 않았다. 대신 음력 9월 9일 중구일(중양절)에 차사(茶祀)를 지내왔다. 그래서 지금도 종가에서는 중구일에 ‘중구차사’라고 해서 사당에서 거행한다. 제물 역시 일반 제사와 달리 간략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학봉 김성일 불천위 제사
안동지역 불천위는 50위(位)에 이른다. 나라에 큰 공적을 세우거나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들에게 내려지는 불천위 후손들은 성대한 제물, 수많은 참사객, 엄격한 격식 등을 갖춰 ‘큰제사(大祭)’를 올린다. 불천위제사는 대외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까닭에 가문의 위상과 품격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이다.

안동의 불천위 제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제물은 도적과 떡이다. 이들 모두 높이가 무려 40㎝에 달할 정도로 웅장함을 드러내는 제물이다. 특히 불천위 인물과 해당 가문의 지명도에 따라 도적과 떡의 높이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안동향교 추걔 석전대제
도적은 예서에 나타나지 않는 제물이다. 대신 편적(片炙)이라 하여 계적(닭), 육적(쇠고기), 어적(생선) 3적을 올리도록 돼 있지만, 이들 3적을 모아서 적틀(炙臺)에 고임 형태로 높이 쌓는다.‘예기(禮記)’에 “지극히 공경하는 제사는 맛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고 기와 냄새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에 가축의 피와 생육을 올린다”라고 했듯이 유가의 제사에서는 생육의 제물을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안동향교의 경우 공자에게는 소머리와 돼지머리를, 나머지 성현들에게는 얇게 저민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생生으로 올린다. 도산서원에서는 퇴계 이황에게는 돼지머리를, 월천 조목에게는 돼지고기 덩어리를 올린다.

도적과 함께 제사상의 웅장함을 드러내는 것이 ‘시루떡’이다. 시루떡을 높이 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뜸을 잘 들여야 한다. 종부들에게 있어 시루떡 뜸 맞추는 일은 그야말로 곤혹스러운 과정이었다. 봉화 닭실마을 충재 권벌종택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평소 제사상에 올릴 시루떡을 찔 때마다 뜸을 맞추지 못해 마음고생이 컸던 종부는 어느 제삿날, 부엌에서 목을 매어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이날 이후 충재종가에서는 시루떡이 아니라 자체 개발한 손가락 굵기의 절편인 ‘동곳떡’을 제사상에 차리고 있다.
학봉 김성일 불천위 제사
이와 함께 제사 규모를 가늠하는 ‘과시적 제물’이라 할 수 있는 탕(湯)이 있다. 탕은 예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제물이다.

탕에는 우모린(羽毛鱗)의 원칙에 따라 계탕, 쇠고기로 만든 육탕, 바다의 비늘달린 생선을 넣은 어탕을 사용한다. 기록에 따르면 원래 계탕에는 닭이 아니라 꿩을 이용했는데, 후대에 이르러 닭으로 바뀌었다고 해 항간에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단탕은 계탕·육탕·어탕을 한 그릇에 담고, 3탕은 계탕·육탕·어탕을 각각 진설하며, 5탕은 계탕·육탕·어탕·조개탕·소탕을 차린다.

안동지역에서는 ‘대과급제 5탕, 양반 3탕, 서민 단탕’이라는 식으로 관직과 신분에 근거해 탕의 개수를 차등화하고 있다. 불천위 종가의 경우 5탕과 3탕이 가장 보편적이다.

안동지역 제사상에 차려지는 갱(탕국)은 약간 유별나다. 다른 지역에서는 쇠고기와 무를 넣은 쇠고기 ‘탕국’을 올리지만 안동에서는 콩나물과 무를 넣은 갱을 사용한다.

무전과 배추전은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유별난 음식인데, 이는 밭을 중심으로 한 경북북부역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특히 배추전은 가문에 따라서는 소적(蔬炙)이라 하여 제사상에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회마을 양진당
안동지역에는 콩가루를 이용한 음식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광산김씨 가문에서는 콩나물과 무 그리고 시래기나물을 콩가루에 묻혀 갱을 끓이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상어(돔배기)와 간고등어도 독특한 제물이다. 안동은 내륙에 위치한 관계로 주로 동해안지역으로부터 생선을 공급받았는데 꼬박 이틀은 걸렸다. 이런 이유로 삭히거나(발효) 소금에 절여도 크게 지장이 없는 생선, 그리고 햇볕에 잘 말린 생선 등이 주를 이룬다.

상어가 사람 잡아먹는 고기라고 하여 다른 지역에서는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지만 상어고기를 제사상에 올리는 곳은 안동·영주·봉화·청송 등과 같이 주로 경북 내륙지방이 대부분이다. 최근 안동의 브랜드 상품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간고등어도 제물로 오른다.

가문마다 제사 격식이 다른 것을 ‘가가례(家家禮)’라고 하는데, 가가례 중에는 특정 가문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학봉 김성일은 생전에 생마를 즐겼던 까닭에 그의 불천위 제사에는 반드시 올리고, 서애 류성룡은 유밀과의 일종인 ‘중개’라는 과자를 즐겨 드셨다 하여 이를 제물로 차린다. 퇴계 종가에서는 기름에 튀겨내는 유밀과는 사치스럽기 때문에 제사상에 올리지 말라는 유계를 받들어 지금도 유과나 약과 등의 유밀과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회마을 충효당
김미영 박사는 “성인도 시속(時俗)을 따른다 라는 말이 있다”며,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것이 제사의 근본이지, 물질로만 받드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제사이며, 성인들 그리고 성인이 되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온 군자들이 후손들에게 남겨준 귀중한 가르침이다”고 말했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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