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댓글팀’ 이어 ‘블랙리스트’, ‘정치인 비판활동’ 등 세갈래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 수사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검찰은 연휴 기간에도 소환자들을 상대로 필요한 조사는 할 방침이지만, 연휴 이후 본격화할 다음 수사 채비를 하는 데도 중점을 두고 있다.

3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와 공공형사수사부가 주축이 된 국정원 수사팀은 추석 당일 전후 등 며칠을 빼고는 연휴를 대부분 반납한 채 출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환 대상자와 일정을 조율해 조사를 이어가는 한편, 출석 일정이 없는 날은 수사기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이 명절 연휴에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것은 국정원 정치개입 수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는 국정원 내부의 ‘적폐청산’ 진상조사와 맞물려 있다.

지난 7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13개 의혹 진상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을 때, 검찰 수사는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박원순 제압 문건, 헌법재판소 사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 좌익효수 필명 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뒷조사 등이 주요 조사대상 항목이었다.

TF의 첫 조사결과는 댓글 사건이었다. 국정원은 심리전단이 2009∼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온라인 여론 조작 활동을 하면서 최대 40여개에 달하는 민간인 외곽조직을 운영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두 번째 결과는 이른바 ‘국정원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였다. 국정원이 원세훈 원장 재임 초기부터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꾸려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예술인과 방송사 제작진의 퇴출을 압박했다는 내용이었다. ‘박원순 제압 문건’도 국정원 내부문건이었음이 밝혀졌다.

세 번째 TF 조사결과는 원 전 원장 재임 시절 국정원이 정부 비판성향의 교수와 정치인에 대해 전방위적인 비난 여론전을 주도했다는 의혹이었다. 리스트에는 야당 의원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날을 세웠던 여당 핵심 의원들도 포함됐다.

수사의뢰 기준으로 검찰의 국정원 정치개입 수사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8월 21일 국정원의 첫 수사의뢰와 함께 외곽팀장 명단을 넘겨받은 검찰은 댓글 활동에 연루된 보수단체와 국정원 퇴직자 모임(양지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지난달 14일 두 번째 수사의뢰 이후 배우 문성근씨, 방송인 김미화씨, MBC PD수첩 제작진이 검찰에 나와 자신들이 겪은 피해를 진술했다. 박 시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세 번째 수사의뢰는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달 29일 이뤄졌다. 검찰 수사는 연휴 이후 본격화할 전망이다.

현재까지 검찰이 구속한 인원은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등 원 전 원장 시절 심리전단에서 일한 국정원 관계자 4명이다. 이들은 모두 ‘민간인 사이버 외곽팀’ 운영과 관련한 혐의로 구속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수사는 피해자 조사 중이고, 정치인 등 비난 여론전 의혹 수사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수사는 전체적으로 초기 단계다.

검찰이 최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출국금지하고 국군 사이버사령부 산하 심리전단의 댓글 공작 문건을 확보하는 등 수사 외연은 더욱 넓어지는 형국이다.

국정원 TF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수사의뢰가 이뤄진다면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는 더 광범위해질 개연성이 크다.

검찰은 연내 사건 마무리를 목표로 하면서도 추가 수사의뢰가 이어질 경우 기간 연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최근 수사팀에 검사를 추가 투입해 수사 인력을 15명 안팎으로 늘렸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의 직접 사정권에 들어올 날이 머지않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메가톤급 수사로 확대될 수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국정원 수사에 대해 “윗선에 대한 수사 한계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밝혀 이런 관측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5년 넘게 지난 시점에서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의 정치 개입 공작을 지시·관여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원 전 원장 등 핵심 피의자들의 비협조도 향후 수사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연합
연합 kb@kyongbuk.com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