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들의 한글 수어, 일상서 쓰는 표현법 제각각
표준사전 개정 등 전문적 통일화 연구·지원 시급

대구농아인협회 직원들이 ‘대구도시철도 3호선’(위)과 ‘아메리카노’를 각기 다른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정일훈 기자 ilhun@kyongbuk.com
왼손은 검지만 펴고 그 위에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구부려 앞으로 움직인다. 왼손 검지와 중지를 펴고 오른손을 ‘ㄷ’ 자로 만들어 전진한다. 둘 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을 뜻한다. 소리를 듣지 못해 말을 하지 못하는 농인(聾人)의 ‘보이는 한글’로 불리는 ‘수어’(手語) 표현법이다.

농인들마다 이 수어 사용법이 제각각이어서 소통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글과 같이 표준화되지 않아서 서로 다른 손짓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다.

실제 2000년께 처음 공통으로 사용하는 표준 수어가 만들어졌지만, 이마저도 돈을 세는 단위나 실생활 먹거리 단어가 없다.

국립국어원의 한국수어사전에는 전문용어수어 1만792개, 일상생활수어 1만862개가 등록돼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단어 수가 50만 개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사투리나 신조어, 은어까지 뻗어 나가 소통은 더 힘들어진다.

당장, 한국수어사전에서는 ‘아메리카노’조차 검색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주먹을 쥐고 엄지만 들어 반시계방향으로 돌리거나 손을 쫙 펴고 깍지를 낀 채 반시계방향으로 돌려 아메리카노를 표현한다. 머리를 쓸어내린 후 엄지와 약지로 원을 만들어 턱밑에 대는 방법으로 아메리카노를 표시한다. 한 단어에 3가지의 수어가 있다.

대구에는 1만2천여 명의 농인이 있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어는 제각각이다.

571돌 한글날을 앞두고 만난 청각장애인인 대구대 재활공학과 최다솔(22·여)씨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수화로 통역할 단어가 없어 난감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영문법 수업에서 ‘동사’라는 단어를 수화로 표현하고 싶어도 고유 단어가 없어 ‘움직이다’라는 수어로 대체한다. 하지만 농인들마다 대체하는 방법이 달라 의미전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뿐만 아니라 법률용어와 의학용어 등 전문용어 수어는 평소 배울 기회가 없어 병원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의료진이 한참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이영미 대구농아인협회 사무처장은 “수어의 통일화와 단어 연구가 미비해 빚어지는 어려움이 엄청나다”면서 “농인들의 한글로 통하는 수어의 통일화와 단어 연구가 되지 않는 이상 수어는 집단의 특성이 강해 다른 집단의 사람들과 명확한 소통을 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 “농인들이 일상적인 소통을 하는 데 있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수어의 전문적인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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