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는 문예 잡지의 춘추전국시대였다. 문학과지성, 창작과비평으로 대별되던 문예지에서 각종 월간, 계간은 물론 무크지까지 속속 출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서울 중심의 얘기이고, 지역의 경우는 문예지들을 찾아볼 수 없었던 때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92년 가을 대구에서 계간 ‘시와 반시’가 창간됐다. 대구 최초의 계간 시 전문지로 일약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시와 반시’의 창간은 대구는 물론 타지역 전문지 창간의 기폭제가 됐다.

‘시와 반시’ 창간 다음 해 부산에서 ‘시와 사상’이 창간됐고, 이어서 광주에서 ‘시와 사람’, 제주에서 ‘다층’ 등이 연이어 창간됐다. ‘시와 반시’는 당시 문단이 문지와 창비로 대별되던 때 지역문학의 항변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와 반시’는 제호가 암시하듯 시든 반시든, 서정시든, 실험시든, 리얼리즘시든 모더니즘시든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시면 조건 없이 지면을 할애했다. ‘시와 반시’를 창간한 강현국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시와 반시는 주로 모더니즘 시학의 정립과 주류에 함몰도지 않는 아웃사이더 정신을 추구한다”고 했다.

올해 103세의 칠레 시인 니카노르 파라의 시집 ‘시와 반시(Poemasy Antipoemas)’가 번역 출간 됐다는 소식이다. 파라는 1970년대 정호승 등 대구 출신 시인들이 주축이 돼 서울에서 활동한 ‘반시’ 동인 활동에도 영향을 줬다. 파라는 20세기 전반 초현실주의 시학에 반대하며 모더니즘이 지향하던 숭고미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렸다.

“난 표현이 서투른 사람이라/ 머시기 거시기라고 말하지.// 난 말을 더듬고,/ 태아를 발로 툭툭 건드린다.// 내 위장은 뭐하러 있는가?/ 누가 이 엉망진창을 만들었나?// 가장 좋은 건 농담이나 지껄이는 것./ 난 내키는 대로 말하겠다.” (‘골 때리는 문제’ 부분)

파라의 시는 서정과 운율이 없다. 시를 위한 특별한 언어도 상정하지 않는다. 연설문, 서간문,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 가을, ‘시와 반시’라는 문학적 화두로 지역은 물론 우리나라 시단에 큰 영향을 준 파라의 시집 출간 소식이 반갑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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