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감상) 저녁에 매달린 지 참 오래 됐다. 그 안에 들어서면 나는 나를 잊을 수 있다 생각했다. 다른 세상의 나는 다 묻히고 내가 보고 싶은 나만 부표처럼 떠있을 수 있다 믿었다. 어느 아침, 저녁 밖에서도 나를 잊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걸었고 아침은 아무 간섭도 하지 않았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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